시편149장 1-9절
149:1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
149:2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 할지어다
149:3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149: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149:5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 지어다
149:6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149:7 이것으로 열방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149:8 저희 왕들은 사슬로, 저희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149:9 기록한 판단대로 저희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성도는 하나님을 향한 기쁨의 찬송과 더불어 두 날 가진 칼을 가집니다. 4절에서 말하는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하셨다는 성도의 찬양하는 입술과 손에 쥐어진 두 날 선 칼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서 어울릴 수 있는 것일까요?
17세기에 독일에서 끔직한 30년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의 가톨릭과 개신교의 충돌이었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149편을 들고나와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 근거가 「두 날 가진 칼로 열방에 보수하고 민족들을 벌하며 왕들과 귀인들을 사슬로 결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양날 검은 모순적인 상황을 말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양날이 섰으니 상대에게 위협적인 무기가 되지만 힘에서 밀리면 자신도 위험해지는 것이 양날 검입니다. 가톨릭은 이 시편을 낭송하고 나가 개신교를 칼로 죽였고 분노한 개신교도 이 말씀을 읽고 나가 가톨릭을 죽였습니다. 말씀을 읽고 서로 죽이고 죽여서 양날에 800만 명이 죽었습니다. 모순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양날 검은 좌우의 모순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좌우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말씀을 칼에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히브리서 4:12 」
시편 149편에서 말하는 칼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칼이 되어 불의와 죄악을 도래내고 드러낸다는 말씀의 검을 말합니다. 에베소서의 전신갑주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칼이라 하였습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 6:17」
말씀을 칼로 토막내서 한 구절만 읽으면 온통 칼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일로 넘칠지 모릅니다. 기자가 기사를 쓰면서 현장을 보지 못한 독자의 문맥적 이해를 돕지 않고 오히려 토막 난 글로 사실을 왜곡하는 글을 쓰는 것이나 성경을 통전적으로 읽지 않고 자기 유익을 따라 부분적으로 차용하여 쓰는 것이 다 어리석고 악한 일입니다.
칼 바르트는 「그리스도인들은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사람은 세상의 불의를 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양손에 들고 있어야 할 것은 입만 벌리는 찬양의 위선과 믿음을 빙자한 폭력이 아닙니다. 찬양하는 입술에 합당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과 세계를 성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성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