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신명기17:1-13
17:1 무릇 흠이나 악질이 있는 우양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
17: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중에서든지 너의 가운데 혹시 어떤 남자나 여자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기고
17:3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17:4 혹이 그 일을 네게 고하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사실하여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17:5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 남자나 여자를 쳐 죽이되
17:6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거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거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17:7 이런 자를 죽임에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17:8 네 성중에서 송사로 다투는 일이 있으되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17:9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로 나아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 것을 네게 가르치리니
17:10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의 뜻대로 네가 행하되 무릇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대로 삼가 행할 것이니
17:11 곧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법률의 뜻대로 그들이 네게 고하는 판결대로 행할 것이요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을 어기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이니라
17:12 사람이 만일 천자히 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을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17:13 그리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천자히 행치 아니 하리라

 


알고 지내는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만, 신학생 시절에 교육전도사로 일하던 작은 교회의 공간에는 성도들이 가져다 놓은 의자나 소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집에 새로운 것을 장만해서 필요 없게 되었는데 혹시 교회에서 필요할지 몰라서 가져다 둔 것들이었습니다. 가난한 교육전도사는 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교회의 비품 전체를 새것으로 구입해서 교체하고 잡동사니들을 내다 버렸다고 합니다. 교육전도사의 메시지는 크고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쓰고 남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지 말고 가치 있고 소중한 것으로 드리십시오」 그렇다고 교회가 새것만 써야 한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새것을 사는 것 또한 비난받을 일도 아닙니다. 가정이든 교회이든 아껴쓰고 다시 활용해서 쓰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집에는 새것을 들여놓았으니 아껴 쓰려는 의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새것으로 교체해서 이제 필요 없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교회로는 가지고 오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쓰고 남은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그것을 드리는 것이 맞습니다. 그때라면 사정에 따라 쓰던 것을 가져와도 되고 중고를 구입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지불하는 상식적인 방법입니다. 「무릇 흠이나 악질이 있는 우양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 흠이나 악질이 있는 것을 드린 이유는 그것의 경제적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태워서 드릴 것이니 좋은 것은 남기고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가증한 것으로 여기십니다. 나에게 필요 없는 것 중에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도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그것입니다.

 

가치에 따라서 그 가치를 지불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믿음을 경제적 논리로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가치와 그것을 위한 지불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급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못한다면 받은 은혜는 망각할 것이고 곧 불평하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인색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 기도회 설교는「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17:13 」였습니다. 사람과의 사이에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먼저 대접하면 서로의 이익은 증진됩니다. 자신을 진심으로 대접하는 것을 알고 나면 진심으로 대접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의 삶이 악으로 가득 차 버릴 이치를 누가 막겠습니까? 그러나 선한 것으로 먼저 섬기면 더 풍성해집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이것을 실천해보면 그 원리가 이 땅에서도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더 많이 주시기 위해 가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진심을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고 자신을 위하여 우상을 섬기고 일월성신에 절하는 것에 대해서 무섭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반드시 죽여서 공동체 안에서 악을 제하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자와 약한 자에 대해서 그토록 선진적인 인권과 사회보장을 말하던 율법이 하나님에게 악을 행한 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죽여서 그 악을 용서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죽여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악입니다. 어제 뉴스에 서울에서 경비원이 인격적 무시를 당하고 폭행을 당하는 일이 반복되자 그 자괴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폭행한 입주자는 경비원을 부리는 종으로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모세가 말하는 사회 안에서 반드시 죽여서 제거해야만 하는 악입니다. 한국에는 이런 종류의 악이 많습니다. 기원전 1400년 노예제도가 있던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할 수 없던 일들이 3400년 지난 한국의 서울에서는 버젓이 일어납니다.

 

코로나의 선제적 대응으로 국가적 위상이 높아지고 국제적 칭찬과 자부심의 말들이 여기저기서 돌아다니지만, 마음을 높일 때가 아닙니다. 한국은 교회가 많다고 자랑하지만, 오직 경제력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을 서열화하는 비인간적 사회입니다. 교회만이라도 율법의 정신이 무엇인지 읽어보았더라면 세상이 이렇게 흘러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성경을 읽어보지도 않고 믿는다고 말하는 문화적 종교의 범람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단호하게 제거해야 하는 것, 남녀를 불문하고 성 밖으로 끌어내어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자신의 돈과 힘을 하나님 삼아 약한 사람을 무시하고 때리는 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