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신명기20:10-20
20:10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할 때에 그 성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
20:11 그 성읍이 만일 평화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온 거민으로 네게 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20:12 만일 너와 평화하기를 싫어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20: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속의 남자를 다 쳐 죽이고
20:14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육축과 무릇 그 성중에서 네가 탈취한 모든 것은 네 것이니 취하라 네가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것인즉 너는 그것을 누릴지니라
20:15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20:1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20: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 하라
20: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케 할까 함이니라
20:19 너희가 어느 성읍을 오래 동안 에워싸고 쳐서 취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 곳의 나무를 작벌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밭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20:20 오직 과목이 아닌 줄로 아는 수목은 작벌하여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지니라

 

오늘 본문은 전쟁에 있어서 수행해야 하는 파괴적 규정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헤렘이라고 하는데 진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안에는 냉정한 파괴를 명하는 헤렘의 규정과 동시에 자비와 배려를 명하는 헤세드의 정신이 공존합니다. 약속의 땅으로 지정된 곳에 대해서는 헤렘이 적용되지만 그외의 지역에 대해서는 진멸하지 않는 인도주의적 입장의 헤세드가 유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기계적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놓여진 상황에서 헤렘과 헤세드를 해석해야 하는 분별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 단호해야 하며 언제 자비로워야 합니까?

 

18절에서 헤렘의 목적을 설명합니다.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케 할까 함이니라」 결정적으로 불씨를 남김없이 소멸해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게서 받을 영향 때문입니다. 인간은 나쁜 것을 먼저 배웁니다. 풍요와 쾌락을 동반하는 음란하고 가증스런 제사, 인신 제사와 유아를 제물로 삼아 축복을 비는 타락한 문화를 배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지금 우려 가운데 말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머지않아 잊어버리고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그 우려들을 현실화합니다.

 

이스라엘은 국가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도 않은 노예 출신의 난민들입니다. 그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지원에 의한 은혜입니다. 은혜로 이기고 은혜로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사실상 모든 면에서 열악했습니다. 다만 이제부터 정착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져 있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국격은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국격은 성숙한 국민의 의식 속에서 나옵니다. 이스라엘에게 자주성과 주체성을 가진 성숙한 시민의식은 아직 없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미국과 일본은 한국과는 비교되는 선진국이었습니다. 미국과 일본에서 생산하는 물건의 품질은 탁월하게 좋았고 그래서 미제와 일제라고 하면 다들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단순히 경제적 것의 선호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까지 영향을 미쳐서 사대주의로 흘렀고 문화적으로 예속되어져 가던 시간을 지냈습니다. 그 문화와 방식에 표준을 부여했습니다. 스스로 약하다고 생각하면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종교와 문화에까지도 예속되는 것입니다.

 

선진의 주변국들에게 자주성이라는 기를 펴지 못하고 문화적인 이미테이션에 휘둘리면 이스라엘은 자신만의 것 즉 하나님의 질서로 예배와 사회를 만들어가지 못하고 방해를 받게 됩니다. 헤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종교와 문화에 영향을 받고 예속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때는 단호해야 합니다. 저는 서른 살까지 지독한 애연가였는데 담배를 끊은 것은 단호한 방법이었지 유연한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습관을 파과하지 않으면 끊기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헤렘이라는 파괴의 규정이 있지만 동시에 대조적인 보호의 규정도 있습니다. 19절과 20절에는 점령할 땅을 포위하고 있는 동안 주변 산야의 나무를 벌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유는 유실수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유실수는 나중에 이스라엘이 먹을 식량입니다. 그래서 열매가 없는 나무일 경우에만 필요에 따라 벌목하여 건축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것도 목적 없이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헬렘은 탐욕과 증오를 위한 파괴가 아니고 회복과 창조를 위한 파괴입니다. 그것에 대한 파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철저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자연환경은 신음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이미 분노하고 반격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자연의 환경과 화해하고 지켜내려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소비적 문화를 파괴해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그것도 철저히 파괴해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가나안 문화에 대한 자비 없는 헤렘과 산야의 열매 맺는 과실수 보호의 헤세드는 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들의 환경을 조성하고 보호하시기 위한 배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