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24:14-22
24:14 곤궁하고 빈한한 품군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문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24:15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
24:16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24: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
24:18 너는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24: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24: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며
24: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24: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1. 품삯을 연체하지 말라
일당을 받아야 하루를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동자가 하루의 일당을 받지 못해 궁핍함으로 하나님께 신원하면 그 책임이 보수를 연체한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배부른 사람은 배고픈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의 입장을 헤야려야 하는 배려의 법입니다. 받지 못한 돈을 기억하고 있는 만큼 마땅이 주어야 할 돈 주지 않는 것 없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2. 벌을 상속하지 말라
범죄의 연대책임을 물어 범죄자의 친족을 함께 처벌하던 제도를 연좌제라고 합니다. 삼족을 멸한다거나 구족을 멸한다는 것은 연좌제입니다. 17세기에 일본이 기독교를 박해할 때 5호감시제라는 것이 있어서 이웃을 서로 감사하게 하고 감시자가 기독교인을 색출해내지 못하면 연좌제로 가족과 이웃까지 처벌했습니다. 종교만 탄압한 것이 아니라 인간성도 학대했습니다. 일본의 5호감시제를 북한이 배워서 사회 통제에 사용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법에서도 상속을 거부하면 채무도 상속되지 않습니다. 자기 죄는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아버지는 자녀의 벌을 받지 않고 자녀는 아버지의 벌을 상속하지 않습니다.
3. 과부의 옷을 압류하지 말라
객이나 과부나 고아는 사회적 경제적 약자입니다. 약한 이유로 송사에 불리함을 당해서는 안됩니다.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고 한 것은 가난한 집의 채무를 인하여 맷돌을 압류하지 말라고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채무상환능력이 없어서 상환이 연체된 경우 한벌 밖에 없는 옷을 압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민법에는 개인파산을 신청하면 면책을 받아서 채무가 면제되는 제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의로 채무를 면탈할 목적이라면 사기에 해당합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약자의 삶을 위한 사회적 배려입니다.
4. 이삭을 남겨두라
추수하다가 추수한 단을 가지고 가는 것을 잊어버렸을때는 다시 가서 그것을 취하지 않고 내버려 둡니다. 추수하는 과정에서 땅에 떨어진 것도 마찬가지로 취하지 않습니다. 이삭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조심하지도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이삭을 주워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레위기 19장과 23장에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룻기에서 룻이 보아스의 밭에 이삭을 주으러 나갔다가 보아스와 결혼하게 되지요. 떨어진 이삭은 누구나 주워갈 수 있었습니다. 밀레의 이삭줍기라는 작품을 자세히 보면 이삭을 줍고 있는 아낙네들 뒤로 말을 탄 감독자의 지시하에 대규모의 추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성들이 줍고 있는 이삭은 그들이 일부러 남기고 간 것들입니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지지말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마음과 재정의 여유를 두십시오. 곧 그것이 집착하고 있던 것 보다 더 행복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자를 위해 부자들을 각출하게 하신 것이 아니고 도울 수 있고 베풀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익명으로 지정헌금을 하여서 곤란한 분을 돕는 분들이 있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세상이 추구하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는 섬기는 것이 이미 받아 누리고 있는 행복한 삶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