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10:1~15
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10:2 엘람 자손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10:3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10:4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10:5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10:6 이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니라 저가 들어가서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근심하여 떡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10:7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들에게 공포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10:8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좇아 삼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회에서 쫓아 내리라 하매
10:9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이 삼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구월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전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를 인하여 떨더니
10:10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로 아내를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10:11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10:12 회 무리가 큰 소리로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10:13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10:14 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본성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여 우리 하나님의 이 일로 인하신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
10:15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저희를 돕더라
오늘 본문에서는 이방인과 결혼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에스라가 그 결혼을 무효화하고 아내와 자녀를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이미 자녀를 낳고 살고 있는 현실적인 가정을 파괴하여 돌려보내라는 것은 어떻게 읽어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문자적이거나 윤리적으로만 보아서는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그 안에 있는 의미를 현재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성경은 가족의 중요성과 그 책임에 대해서 항상 진지하지만 신구약을 불문하고 그것이 믿음의 자리를 침범하지는 못합니다. 중요한 만큼 거기에 함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어머니 마리아를 배척하여 문전박대를 한 적도 있지만 죽는 순간에도 마리아의 노후를 준비하셨습니다. 무관심이 아니고 우선순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돌이키라는 말을 합니다만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있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돌이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루어야 합니다. 돌이키기 위해서는 현실을 부정해야 하는 희생이 따릅니다. 현실에 지배받고 있는 우리가 현실을 소급하여 과거의 선택으로 돌이킨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잘못 끼워진 단추는 처음으로 돌아가 전부 풀지 않은 한 바꾸어 낼 수 없습니다. 회개가 어려운 것은 그것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말한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다시 자신의 삶의 현실을 파괴해야 하는 고통입니다. 에스라가 요구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이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이라면 삶에서 결정과 선택은 얼마나 신중해야 하겠습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j9EjzDDk1_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