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열왕기하 5:1-14

5: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5: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5: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5: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5: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5: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5: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5: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5: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입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5: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5: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5: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큰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등, 우리의 상식에는 등가교환의 법칙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한 쪽이 일방적인 이득을 취하는 거래는 의심부터 해보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나아만에게 이루어진 기적은 너무나도 단순한 일의 결과로서 베풀어진 기적입니다. 그렇기에 나아만은 처음 그 요구를 들었을 때에,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적이 아니라 단순히 강에서 몸을 씻는 것으로 나병이 낫는다면, 굳이 요단 강에서 씻어야만 했는가, 내 고향의 더 깨끗한 강물들에서 씻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겠는가 하는 의심이었습니다. 

 그는 요단 강에서 몸을 씻는 것만으로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에게 이것은 단순한 치료법으로 보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가 선지자의 말대로 요단 강에서 몸을 씻었을 때에, 그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요단 강에만 있는 특별한 능력, 온천의 효능과 같은 것이 아닌,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당시의 나병은 단순히 심각하고 위험한 전염병으로 여겨지는 것 이상으로 차별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이유로 현재의 의학계에서도 차별적인 의미가 내포되어진 나병이라는 이름이 아닌, 한센병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치유되는 것이 불가능한,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살아가야만 하는 저주와 같은 병, 그리고 그 저주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이 나병환자들이 겪는 삶이었습니다.

 

 그러한 삶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아만에게 요구되어진 것이 바로 요단 강에서 몸을 일곱 번 잠그는 것, 그의 상식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비싼 값을 요구하는 것도, 종들이 말하였듯이 큰 일을 행하여야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요단 강이 아닌 더 좋은 물에 몸을 씻어야만 나아질 것만 같은 것, 그의 상식 속에 이 일은 등가교환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대로 요단 강에 몸을 잠그었을 때, 그에게 회복이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통해, 설교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듣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대가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죄의 대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용서받기 위해 내가 어떠한 희생이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에 시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 말씀처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등가교환의 상식에 걸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등가교환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대가를 우리에게서 찾지 않으십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라는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언제나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강조하고 있음을 지금까지 몇차례의 묵상 속에서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질서라는 것 역시 강조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그 복음을 믿는 것 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은 등가교환에 어울리지 않는 대가인 것 같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라는 대가를 지불하신 것 역시 어울리지 않는 대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평등해 보이는 방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를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있어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대가를 지불하실 정도로 존귀한 존재, 사랑스러운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대가를 먼저 지불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