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3:21~30
23:21 왕이 뭇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23:22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열왕의 시대에든지 유다 열왕의 시대에든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23:23 요시야왕 십 팔년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23:24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박수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23: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23: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진노하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케 한 그 모든 격노를 인함이라
23:2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뺀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한 이 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23:28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 되지 아니하였느냐
23:29 요시야 당시에 애굽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하여 유브라데 하수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나본 후에 죽인지라
23:30 신복들이 그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그 묘실에 장사하니 국민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저에게 기름을 붓고 그 부친을 대신하여 왕을 삼았더라
■요시야는 유다가 잃어버린 유월절을 다시 지키게 합니다. 그의 리더십과 추진력은 강력했고 25절은 그에 개혁과 신앙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합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23:25」 이것은 신명기 6:5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명령에 대한 요시야의 평가입니다. 요시야의 개혁 의지에 불을 붙혔던 것이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서였고 그것이 바로 신명기였기 때문입니다.
■개혁의 의지가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이런 개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요시야에게만 있던 성품, 두려움 없이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라는 은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시야의 이러한 성격이 동일하게 작용해서 이집트의 바로 느고와의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이집트는 앗수르를 돕기 위해 북쪽으로 이동하려고 했고 유다와는 직접적인 전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강성 요시야는 이집트와의 전쟁을 선택했고, 이로 인해 그는 므깃도 전투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의 죽음이 어이없고 간단히 묘사된 것은 그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암시합니다.
■강한 성격은 장애물을 치고 나가는 데 유리하지만, 신중함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강성 요시야는 종교 개혁을 이끌어냈지만, 강성인 이유로 목숨을 잃고 유다의 개혁도 미완으로 끝나고 맙니다. 요시야의 불도저식 카리스마는 양날의 칼이었고 그 한쪽 칼로는 우상을 베고 다른 칼날로는 자신과 유다를 벤 것입니다. 이집트 군대 앞에서는 우상을 때려 부수던 망치를 잠시 내려놓고 외교로 전환해야 했습니다. 당시 유다는 바벨론과 앗수르 그리고 이집트라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이미 체력이 약해진 상태였고 바벨론과 이집트는 유다에게 중요한 위협인 동시에 한편 잠재적인 동맹이 될 수 있었습니다. 군사적 갈등을 피하는 외교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실력과 대화의 완급은 이 시대에도 필요합니다. 내부적인 개혁은 힘 있게 추진해야 하고 외교는 평화롭고 신중해야 합니다. 양날의 검을 극복하고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