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52:24~34
52:24 시위대 장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문지기 세 사람을 잡고
52:25 또 성중에서 사람을 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장관 하나와 또 성중에서 만난 바 왕의 시종 칠 인과 국민을 초모하는 군대 장관 서기관 하나와 성중에서 만난바 국민 육십 명이라
52:26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그들을 잡아가지고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52:27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죽였더라 이와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52:28 느부갓네살의 사로잡아 옮긴 백성이 이러하니라 제 칠년에 유다인이 삼천 이십 삼이요
52:29 느부갓네살의 십팔년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옮긴 자가 팔백 삼십 이인이요
52:30 느부갓네살의 이십 삼년에 시위대장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옮긴 유다인이 칠백 사십 오인이니 그 총수가 사천 육백 인이었더라
52: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지 삼십 칠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이 월 이십 오일에 그가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52:32 그에게 선히 말하고 그의 위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위보다 높이고
52:33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52:34 그의 쓸 것은 날마다 바벨론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예루살렘을 정복한 느부사라단은 대바베론 강경론자들, 즉 어리석은 유다의 기득권자들을 잡아 느부갓네살에게로 데려가 학살합니다. 거기서 성전 제사를 수행할 제사장들도 죽임을 당하고 이른바 지도자층은 약속의 땅을 잃고 바밸론으로 끌려갑니다. 이것이 예레미아서가 전하는 마지막 내용입니다.
예레미야서는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자기 믿음 안에 함몰된 망상들이 망하는 이야기입니다. 자신과는 싸우지 않고 막연한 개념 안에서 믿음을 추상화하고 왜곡된 확신에 빠져버린 시대에 하나님은 언약의 집행을 정지하시고 심판을 실행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을 굳게 붙들고 있었겠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한 것은 하나님에게 일방적인 신실만을 요구하고 그들은 계약을 이행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해체를 시작했습니다. 바벨론은 세상입니다. 타락한 성전 종교가 세상에게 짓밟히고 무너지는 것을 읽고 있는 우리는 그것을 남의 이야기로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51장 45절의 말씀이 귀에 남아 있습니다. 「나의 백성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나 여호와의 진노에서 스스로 구원하라」
장로 출신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환호했던 한 전직 공무원은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로 17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이 끝난 후 자신은 정치보복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정치보복이라면 언젠가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시겠지만 여전히 자신을 속이고 국민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면 그 장로는 아직도 구원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기회는 아직 남아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심판의 두려움 위에 회복과 소망의 씨를 뿌려놓고 계십니다. 예레미야서는 느부갓네살의 아들 에윌므로닥에 의해 유다왕 여호야긴이 석방되고 복권되는 이야기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마치 속편을 찍을 영화 감독이 마지막 장면에 복선을 깔아두듯 다음 이야기가 부활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긴이 바로 석방된 것은 아닙니다. 37년간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여호야긴이 석방 복권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37년 수감생활 동안 여호야긴의 마음 안에 생긴 변화 때문일 것입니다. 몸은 망했으나 영혼이 소멸되는 날이 오기 전에 자신의 패악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공의에 항복해야 합니다.
못난 왕 여호야긴은 바벨론에서 복권될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에도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문제많고 흠많은 사람들이 끼여있습니다. 간음을 저지른 사람도 있고 창녀도 있고 이방인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자랑스런 혈통을 통해서 온 것이 아니고 오직 죄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소망입니다. 탐욕스러운 마음과 높아진 마음을 포기하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것들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거짓을 칠하지 말고 예수 이름 앞에 고백하고 용서함을 받는 것이 구원의 소망입니다. 추워졌습니다. 모두가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할 텐데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을 읽고 자신의 고정된 관념과 싸우고 안주했던 현실을 떠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