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9-21
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수 있나이까
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3:21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하는 것을 헬라어로 케리그마(κῆρυγμα)라고 합니다. 선포라는 의미입니다. 이사야 61장을 인용한 누가복음 4장18,19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의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 케리그마입니다.
예수님은 물과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이야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바람 이야기로 어안이 벙벙한 니고데모에게 여전히 지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케리그마적 선포로 일관하십니다. 본문은 압축된 복음 설교와 같습니다. 사랑은 고백함으로 선언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 하나님이 죽었습니다. 설명하려는 사랑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때론 거절되기도 하겠지만 고백함으로써 사랑은 존재하고 선언됩니다.
예수님의 케리그마는「진실, 증거, 땅의 일, 하늘의 일, 하늘에서 내려온 자, 하늘로 올라간 자, 세상을 사랑하여 주신 독생자, 믿는 자가 얻을 영생, 세상으로 온 빛,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한 사람들, 빛을 미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진리를 쫓는 사람들…」이라는 선언적 언어들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이기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만 이 선언에도 추가적인 부연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약 선생인 니고데모가 알아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는 오직「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에게 불평했던 일로 불뱀에게 물렸습니다. 하나님은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방도로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 올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장대의 놋뱀을 바라본 자는 살았고 바라보지 않은 자는 독이 퍼져 죽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잘 알고 있는 민수기(21장)의 이야기입니다.
장대에 매단 놋뱀을 올려다 보기만 하면 나아서 살 수 있다는데 누가 그것을 보지 않고 죽는단 말입니까? 그러나 그것을 올려다 보지 않아서 죽은 사람은 많았습니다. 이유를 설명하는 것보다 상황을 대입해 보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겠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여도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 놋뱀을 쳐다보지 않고 죽은 사람들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즈음에서 니고데모는 복음 이해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성경 중에 성경, 복음 중에 복음이라고 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은 니고데모를 향한 케리그마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구원의 선언입니다. 불뱀은 독을 가지고 있지만 놋뱀은 그 독을 씻어 치유하는 구원의 약속이었습니다. 인자가 들려야 한다는 것은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저주의 나무였지만 예수의 십자가는 죽을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약속이었습니다.
예수의 케리그마 속에서 유일하게 니고데모가 알아들을 수 있던 이야기는 광야의 놋뱀 이야기였지만 이것이야말로 선언 중에 선언입니다. 놋뱀을 바라보기만 하면 산다는 선언이 아니었습니까? 죽어가는 사람이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하면 산다는 것입니다. 불순종으로 독이 퍼져가는 자들을 향해 제발 놋뱀을 쳐다보고 살라고 소리치던 모세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죄가 퍼져가는 사람들을 향해 십자가의 구원을 외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십자가는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시려고 하나님이 죽으셨던 구원의 유일의 방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