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4장 13~21
4: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4: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4: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사도 요한의 신학은 사랑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사랑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사랑으로 믿음을 구현합니다.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서 만년을 보낼 때 모든 설교에는 어김없이 서로 사랑하라는 권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 안에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 그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은 영들을 시험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4장은 영을 분별하는 것과 서로 사랑하라는 것, 이 두 가지 주제가 섞여 있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권면은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악한 영은 서로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위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의로움과 정당함의 논리에 빠져서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선악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을 분별하지 못하고 속고 있는 것입니다. 영을 분별하라는 것과 서로 사랑하라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19」사랑의 근거는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먼저」는 우리에게 「서로」가 됩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그 속성상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결국 사랑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0」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으로 거짓말이 되어 드러납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형제를 먼저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는 믿음의 공허함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선제적으로 사랑해야만 서로 사랑함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이 먼저 사랑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고 그 사랑에 대한 진실한 고백이 됩니다. 요한이 말하는 사랑은 적극적인 것입니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먼저 사랑한다는 것이고 먼저 사랑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