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2장 13~25
12:13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12:14 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지 못하느니라
12:15 그가 물을 그치게 하신즉 곧 마르고 물을 내신즉 곧 땅을 뒤집나니
12:16 능력과 지혜가 그에게 있고 속은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하였으므로
12:17 모사를 벌거벗겨 끌어가시며 재판장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며
12:18 열왕의 맨 것을 풀어 그들의 허리를 동이시며
12:19 제사장들을 벌거벗겨 끌어 가시고 권력이 있는 자를 넘어뜨리시며
12:20 충성된 자의 말을 없이 하시며 늙은 자의 지식을 빼앗으시며
12:21 방백들에게 멸시를 쏟으시며 강한 자의 띠를 푸시며
12:22 어두운 가운데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시며
12:23 만국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열국으로 광대하게도 하시고 다시 사로잡히게도 하시며
12:24 만민의 두목들의 총명을 빼앗으시고 그들을 길 없는 거친 들로 유리하게 하시며
12:25 빛 없이 캄캄한 데를 더듬게 하시며 취한 사람 같이 비틀거리게 하시느니라
욥과 친구들이 각자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친구들의 생각에 대해서 반대의견을 제시합니다. 이런 대화는 우리의 일상 중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인데 하나님을 증명해내지는 못할지라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므로) 근거를 가지고 논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하나님과 그것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은 항상 중요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또는 자신이 설정한 하나님을 근거로 해서 욥을 정죄하고 있지만, 욥은 그것을 확정적으로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속는 자와 속이는 자가 다 하나님 안에 있고 권력도 뒤집을 수 있고, 지혜 있는 사람의 판단력도 사라질 수 있고, 귀족이 수치를 당하고 강자의 힘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욥의 말은 현상에 대해서는 그 내막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인데, 「인간이 가진 감각이나 인식은 대단히 부분적인 것이어서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없고 인간은 본질이 아닌 현상을 보고 그것을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철학적 입장에서의 「불가지론(不可知論)」입니다. 물론 불가지론은 기독교 신앙에서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간주됩니다. 흔히 말하는 불가지론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말해보아야 알 수 없는 것이니 말하지 말자」는 포기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불가지론은 신학이 아니고 인간의 인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그리고 불가지론의 전제가 무신론인 것도 아닙니다. 당연히 욥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인간이 교조적으로 판단하고 재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불가지론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알 수 있고 알아갈 수 있고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처음부터 지적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지적 대화의 결과로 하나님을 증명하고 믿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믿음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발전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믿되 드러나는 현상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정죄할 수 없다는 욥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탁월한 변증가 오스왈드 챔버스의 말을 인용합니다.
「지적인 불가지론자가 된다는 말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세상의 질서 속에서 하나님을 보면 굴절되어 보인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굴절된 일들을 허락하신다. 그리고 그 일들은 인간의 생각대로 결코 진행되지 않는다. 만사의 근원에는 뭔가 잘못된 것, 즉 굴절이 있다는 성경의 계시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 그들은 지적으로 불가지론자가 되기로 맹세한 자들이다. 그들은 “나는 내 지식의 한계에 닿았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라고 고백한 자들이다.」
음악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