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욥기 19장 21~29
19:21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19:22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핍박하느냐 내 살을 먹고도 부족하냐
19:23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19:24 철필과 연으로 영영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19:26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19:27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
19:28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꼬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
19:29 너희는 칼을 두려워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친구들에게 불쌍히 여겨달라고 호소한 욥은 다시 하나님에게로 향합니다. 여기서 보면 하나님에 대해서 의식하고 있는 것은 친구들이 아니고 욥입니다. 친구들의 하나님은 자신의 논리 안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존재, 죽은 하나님이지만, 욥의 하나님은 모순과 고통 속에서 처절하게 묻고 있는 존재, 살아있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답을 정해두면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고 내가 질문을 계속하면 하나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욥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굴절되고 왜곡되어 있는 세상, 죄에 빠진 존재들이 서로 고발하고 정죄하는 세상 밖, 즉 육체의 죽음 너머에 있는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서 모든 것이 명명백백히 밝혀진 곳에 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포자기도 아니고 자학도 아니고 소망입니다. 삶이라는 것과 사람이라는 것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를 깨닫고 있기 때문에 주어지는 소망입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불완전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은 진실대로 믿음은 믿음대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날에 심판받을 것은 친구들입니다. 「너희는 칼을 두려워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두려워해야 할 것은 행복의 상실이나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 원통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심판자의 행세를 한 친구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나의 잣대로 사람을 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TZYqODo7o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