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0장 12~29
20:12 그는 비록 악을 달게 여겨 혀 밑에 감추며
20:13 아껴서 버리지 아니하고 입에 물고 있을지라도
20:14 그 식물이 창자 속에서 변하며 뱃속에서 독사의 쓸개가 되느니라
20:15 그가 재물을 삼켰을지라도 다시 토할 것은 하나님이 그 배에서 도로 나오게 하심이니
20:16 그가 독사의 독을 빨며 뱀의 혀에 죽을 것이라
20:17 그는 강 곧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을 보지 못할 것이요
20:18 수고하여 얻은 것을 도로 주고 삼키지 못할 것이며 매매하여 얻은 재물로 즐거워하지 못하리니
20:19 이는 그가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버림이요 자기가 세우지 않은 집을 빼앗음이니라
20:20 그는 마음에 족한 줄을 알지 못하니 그 기뻐하는 것을 하나도 보존치 못하겠고
20:21 남긴 것이 없이 몰수히 먹으니 그런즉 그 형통함이 오래지 못할 것이라
20:22 풍족할 때에도 곤액이 이르리니 모든 고통하는 자의 손이 그에게 닿으리라
20:23 그가 배를 불리려 할 때에 하나님이 맹렬한 진노를 내리시리니 밥 먹을 때에 그의 위에 비같이 쏟으시리라
20:24 그가 철병기를 피할 때에는 놋활이 쏘아 꿸 것이요
20:25 몸에서 그 살을 빼어 낸즉 번쩍번쩍하는 촉이 그 쓸개에서 나오고 큰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느니라
20:26 모든 캄캄한 것이 그의 보물을 위하여 쌓이고 사람이 피우지 않은 불이 그를 멸하며 그 장막에 남은 것을 사르리라
20:27 하늘이 그의 죄악을 드러낼 것이요 땅이 일어나 그를 칠 것인즉
20:28 그 가산이 패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날에 흘러가리니
20:29 이는 악인이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요 하나님이 그에게 정하신 산업이니라
소발은 악은 필연적으로 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악에 대한 것이 아니고 욥에 대한 것입니다. 욥은 망할 짓을 했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의 고통은 욥이 입에 악을 물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뱃속으로 들어간 것이고 그 독은 필경 욥이 탐욕과 착취로 이룬 재산일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욥의 것을 다 토해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소발은 욥 사건을 자업자득이라는 원리로 상상했고 그 비유와 표현도 문학적으로 그럴싸하지만 상상일 뿐입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고 전제가 틀렸으니 화려한 수사나 설득력은 오히려 더 위험해 보일 뿐입니다.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단점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심각해지면 자신의 단점이 누군가에게 투사되어 거울처럼 보이게 되면 민감하게 그것을 혐오하게 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서 자신의 단점이 발견될 때 필요 이상으로 분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단점이 타인에게서 발견되면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용서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것을 심리학에서 자기혐오라고 합니다. 자기를 혐오하는 것이 타인의 혐오로 나타나서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소발의 설득력 있는 말을 듣고 보니 소발은 악인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은 어떻게 해야 잘 벌 수 있는지 어떻게 자기의 입 안에 독을 숨겨둘 수 있는지를 잘 아는 사람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일방적으로 상상한 욥의 악을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런 사림이기 때문은 아니겠습니까? 그런 자기를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욥을 더욱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소발의 글에는 확실히 혐오가 있습니다. 소발은 욥에게 투사된 자기를 혐오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자기혐오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높은 자기 파악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기혐오는 직접적인 자학으로 나타나지 않고 그것을 부정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타인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허세를 부리는 공격성으로 나타납니다. 설교하면서 믿음이 없다는 것을 책망하는 나의 모습이나 여느 목사들의 호통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김없이 소발과 같은 자기혐오의 방어기제를 발견하고는 합니다.
음악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