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3장 14~33
33:14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33:15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33:16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33:17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33:18 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
33:19 혹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33:20 그의 마음은 식물을 싫어하고 그의 혼은 별미를 싫어하며
33:21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33:22 그의 혼이 구덩이에, 그의 생명이 멸하는 자에게 가까와지느니라
33:23 그럴 때에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서 그 정당히 행할 것을 보일진대
33:24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사 이르시기를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33:25 그런즉 그 살이 어린 아이보다 연하여져서 소년 때를 회복할 것이요
33:26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33:27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전에 범죄하여 시비를 바꾸었으나 내게 무익하였었구나
33:28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33:29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3:30 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 돌이키고 생명의 빛으로 그에게 비취려 하심이니라
33:31 욥이여 귀를 기울여 내게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말하리라
33:32 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너를 의롭게 하려 하노니 말하라
33:33 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너를 가르치리라
욥의 세 친구들은 고난을 죄로 인해 받게 되는 하나님의 징벌로 해석하였습니다만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욥도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했지만 엘리후는 하나님이 고통을 통해서 이미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고통은 멸망을 위한 것이 아니고 구원과 회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논쟁에서 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우의 수인지 엘리후가 체험한 고통의 신학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엘리후의 관점은 지금까지 친구들의 지루한 언어에 비하면 신선하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욥의 친구들의 해석을 전면적으로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죄에 대한 벌, 잘못 산 것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잘못 살아놓고 엘리후의 이른바 의로운 고난에 기대어 자신의 불의와 죄를 합리화하는 비겁을 범할 수 있고 어떤 이는 질병과 고통을 하나님의 저주로 생각하고 자책하고 포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은 다르고 그 상황의 해석 없이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징벌이라면 회개해야 할 것이고 연단이라면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리할 수 없는 상태로 섞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하시고 해석은 사람이 합니다. 말씀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상황도 해석해야 합니다. 말씀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도 순종해야 합니다. 해석은 이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나를 비우고 객관화할 때 가능해집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실수한 것에 대해서 두고두고 생각하며 확대해석하기를 좋아하지만, 하나님이 놓아주신 상황에 대해서는 좀처럼 해석하려 하지 않습니다. 해석하지 않고 알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말씀이 내 앞에 있고 모든 안테나를 하나님께 향해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고 나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해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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