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6장 1~13
6:1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6:2 나의 분한을 달아 보며 나의 모든 재앙을 저울에 둘 수 있으면
6:3 바다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럼으로 하여 나의 말이 경솔 하였구나
6:4 전능자의 살이 내 몸에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6:5 들 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6: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6:7 이런 것을 만지기도 내 마음이 싫어하나니 못된 식물 같이 여김 이니라
6:8 하나님이 나의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며 나의 사모하는 것 주시기를 내가 원하나니
6:9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그 손을 들어 나를 끊으실 것이라
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
6:11 내가 무슨 기력이 있관대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관대 오히려 참겠느냐
6:12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6:13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지혜가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의 이유를 죄로 단정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긴 잔소리를 마쳤습니다. 엘리바스가 쓰는 언어는 무거운 것이었으나 그것이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 가벼웠습니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사람은 죄에 빠진 존재라서 정의로운 하나님에 비추어 보면 사람에 대한 비난의 소재는 넘칩니다. 욥이 전존재를 통해 겪고 있는 고통은 엘리바스의 입에서 나오는 재치의 말로는 대화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고 또 그렇게 말했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그 말은 인간은 고통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기에 하나님께 항복하고 고통의 하감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고통이 하감되지 않고 가중되어 인간이 견딜 수 없게 되면 인간은 회복이 아닌 끝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 너머에는 고통 없이 쉴 수 있는 안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고통을 생각하고 보면 인간은 참 불쌍한 존재입니다. 견딜 수 없는 극심한 고통 앞에서 인간이 구할 수 있는 것은 죽음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고 의료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마약을 투약하여 그 고통을 아주 조금 덜어주는 것밖에 없습니다.
심해어 낚시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희귀한 물고기가 낚여 올라오는데 바닷속을 나오는 순간 눈알이 튀어나오고 내장이 입으로 튀어나오면서 죽습니다. 압력의 차이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낮은 곳에 사는 물고기를 깊은 곳에 넣으면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쪼그라 들어버릴 것입니다. 본문이 고통과 죽음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이라는 괴물 앞에서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의지가 그것을 견디어 낼 수 있겠습니까? 고통받는 욥에게 신학적 원인을 취조하지 말고 죽을 만큼 힘든 욥의 고통이 아주 조금이라도 전달되었다면 욥기를 잘 읽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눈알이 튀어나오고 내장을 토해낼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비록 죽음 너머의 고통 없는 세상을 기다리지만 그것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0」 욥이 회개하지 않고 고집부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성결하게 살려고 몸부림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고통받는 욥은 불쌍하지만 욥의 믿음이 진실한 것이었음을 확인하고 나니 일상을 살고 있는 나의 믿음이 불쌍하여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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