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3:16~22
3:16 내가 해 아래서 또 보건대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도다
3:17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3:18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하심이라 하였노라
3:19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3: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3: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3:22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솔로몬은 인간과 인간들이 구성하고 있는 세상이 불완전하다는 것에 대해서 고발합니다. 재판과 공의는 억울하고 원통한 인간의 마지막 의지가 되어야 하지만 재판하는 이가 악을 행하고 공의를 행하여야 하는 자가 악을 행하니 더는 소망을 둘 곳이 없어집니다. 진실과 정의보다 이익이 앞서는 것이 세상이지만 하나님은 그 욕심많은 권한들을 결국 심판하실 것입니다.
솔로몬의 허무는 계속됩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이 명징한 진리를 누가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물리학자는 죽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고 살고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우주의 모든 것은 사실상 죽어있는 상태인데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에만 한시적이고 제한적으로 생명이 주어져있다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보아도 죽음은 당연한 것이니 원통한 것이 아니고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허무주의는 다시 간절한 현실주의가 됩니다. 인생은 그 허무의 자각 위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즐거워하며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