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5장 1~14
5: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5:2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 하리라
5:3 그들이 가로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온역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5:4 애굽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를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
5:5 또 가로되 이제 나라에 이 백성이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역사를 쉬게 하는도다 하고
5:6 바로가 당일에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장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5:7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 소용의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로 가서 스스로 줍게 하라
5:8 또 그들의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자 하나니
5:9 그 사람들의 고역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5:10 간역자들과 패장들이 나아가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바로의 말씀에 내가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리니
5:11 너희는 짚을 얻을 곳으로 가서 주우라 너희 일은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5:12 백성이 애굽 온 땅에 흩어져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다가 짚을 대신하니
5:13 간역자들이 그들을 독촉하여 가로되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같이 당일 일을 당일에 마치라 하며
5:14 바로의 간역자들이 자기들의 세운바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을 때리며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
모세와 아론이 이집트의 바로 앞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광야로 내보내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을 들은 바로는 예배를 드리겠다는 것이 게으름의 발상이라고 무시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 동안에 더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의 노동의 부담을 가중시킵니다.
쉴 틈 없이 더 많은 일을 하게 하면 예배를 드리겠다는 생각은 안 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논리와 똑같습니다. 4절의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를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는 말은 예배할 시간 있으면 일이나 하라는 세상의 말입니다. 일이 하나님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시간은 없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사람을 지배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바로의 노예가 아니고 쉬지 않고 일하게 하는 세상의 노예가 되어서 예배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일에 대한 책임감도 노동의 가치도 중요합니다.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는 노동과 생산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이 바빠서라는 습관적 발언은 나의 하나님은 노동과 경제라는 또 하나의 종교적 고백이기도 합니다. 생산과 부의 노예가 되어버리면 그 출처인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는 희생제물을 드리는 예배입니다. 바로가 보기에 희생제물도 의아한 것입니다. 시간적 여유와 잉여재정이 많아서 동물을 태워 없애는 소모적 종교행사를 하는구나라고 조소하는 것입니다. 바로의 말 중에 맞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 하리라 2 바로는 노동과 생산의 출처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바로도 노예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경제적 논리 안에서 노예라는 노동력에 집착하는 노예의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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