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출애굽기 21장 12~27
21:12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21:13 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21:14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21:15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21:16 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21:17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21:18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하나가 돌이나 주먹으로 그의 상대방을 쳤으나 그가 죽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가
21:19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걸으면 그를 친 자가 형벌은 면하되 그간의 손해를 배상하고 그가 완치되게 할 것이니라
21:20 사람이 매로 그 남종이나 여종을 쳐서 당장에 죽으면 반드시 형벌을 받으려니와
21:21 그가 하루나 이틀을 연명하면 형벌을 면하리니 그는 상전의 재산임이라
21:22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따라 낼 것이니라
21:23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21: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21:25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21:26 사람이 그 남종의 한 눈이나 여종의 한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 것이며
21:27 그 남종의 이나 여종의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지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과 그에 따른 피해 보상에 대한 규정입니다. 폭력이 있으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길 것입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폭행 치사의 처벌은 사형입니다. 이러한 정당한 처벌이 있어야 피해자와 가족의 원통함을 갚을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처벌로 인해 사회적 경각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었을지라도 그것이 고의적 살인이 아니라면 가해자에게 살길을 열어줍니다. 도망가게 했다는 것은 유족들이 복수하지 못하도록 도피처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치사에 이르지 않은 폭행의 경우는 죽이지 않고 손해를 배상하게 했습니다. 만약 종이 폭행 사건을 일으켰을 때에는 그 종을 죽임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주인의 재산권까지도 조심스럽게 배려하고 있습니다.

 

울법은 범죄를 선악의 흑백논리로 다루지 않습니다. 관점은 죄의 위협에서부터 공동체의 공생을 지키는 것입니다. 피해자 보상과 가해자 처벌은 물론이고 관련된 이해관계와 가해자 기본권까지 보호하고 있습니다. 죄와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공생할 수 있는 중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자기 부모에게 폭력을 행하는 존속폭행은 반드시 죽이라고 했습니다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부모에게 언어 폭력을 행사하는 자도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에는 정상참작의 조항이 없습니다. 반드시 죽이라고 했습니다. 법이 하려는 것은 죄가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최소한의 인간됨을 위한 몸부림 같은 것입니다.

 

23절 이후「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23-25」 고 했습니다. 이른바 동해복수법 또는 동태복수법입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의 의도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받은 만큼 돌려주라고 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받은 만큼만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원한을 담아 더 많은 복수를 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눈에는 눈만, 이에는 이만인 것입니다. 복수는 또 복수를 낳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죄로 인한 피해를 감정에 따라 복수하게 내버려 두면 인간은 전멸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인용하여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38-44」

 

예수님은 동해보복법도 하지 말라고 했으니 예수님에 의해서 율법은 갱신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행동방식이 바뀐 것이지 정신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인간의 죄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호 간의 최선의 중재안이 마련된 것입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이 율법은 폐기된 것이 아니고 최선이 더 강조된 것입니다. 죄가 끊이는 않는 세상과 인간들에게 용서보다 큰 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오신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나에게도 십자가에 올라가 너의 죄만큼의 피를 흘리라고 하셔야 합니다. 죄라는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세상에서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만이 백신입니다.

 

마태복음의 남은 가르침을 마저 읽겠습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45-48」

https://www.youtube.com/watch?v=WS8dXRHFZ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