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잠언
1:20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1:21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
1: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1: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1:24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 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1: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1: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1: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임하리니
1: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1: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1: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1: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1: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1:33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본문에 의하면 지혜 없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과 거만한 자들과 미련한 자들과 지식을 미워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아무것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불량한 태도를 가진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겸손해 보일 수 있고 지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고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은 말하지 못할 것이고, 읽지 못하는 사람은 쓰지 못할 것이고, 배우지 않는 사람은 가르치지 못할 것이고 알지 못하는 사람은 믿지 못할 것입니다.

 

지혜가 없으므로 남의 지식만 소비하다가 자기 지식은 생산하지 못합니다. 남의 설교는 듣지만 자신의 말씀은 없고 남의 간증은 듣지만 자신에게 남은 하나님의 흔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날 방법은 없습니다. 수많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과 그것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회고하고 추론하고 통찰하지 않고는 간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저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도덕적 불감을 「악의 평범성」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아이히만은 나치당원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람을 열심히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파괴하는 일이었습니다.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 의미를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히만은 성실한 공무원으로 500만 명을 죽이고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사유불능성」입니다. 생각하지 않는 죄입니다. 그것이 현대적 악의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1990년 일본에서 몬겐압사사건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가 지각을 단속하면서 교문을 닫았는데 한 여학생의 머리가 끼여 사망했던 사건입니다. 시간과 메뉴얼에 따라 정해진 일을 열심히 수행했지만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학생은 죽었고 교사는 살인을 범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규칙과 메뉴얼에 정해진 대로 하면 그것이 옳다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때로는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악의 평범성」입니다. 그것이 생각하지 않는 무능, 즉 「사유의 불능성」입니다. 생각하며 살아야겠습니다. 귀가 머리에 붙어있고 말을 귀로 듣는 이유는 그 말을 머릿속에 넣고 생각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을의 고요한 묵상을 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