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잠언 3:11~26
3: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 하지 말라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3: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3: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3: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수 없도다
3:16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3: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3: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3:19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
3:20 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3:21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3:22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3:23 네가 네 길을 안연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3:24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3:25 너는 창졸간의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
3:26 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11절에서 「징계」와 「꾸지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혼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겠지만 보다 넓게 보면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인식의 오류에 대한 지적」일 수도 있고, 또는 알지 못하는 「무지에 대한 계몽」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필요하지 않은 인간은 없을 테니까요. 실패는 결론이 아니고 과정입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이 실패가 아니고 오직 포기하고 알려고 하지 않고 일어서려고 하지 않는 것만이 실패입니다. 물론 실패라는 감정을 환영할 수 없고 즐거워할 수도 없지만 누구나 경험상 실패를 통한 학습능력이 크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성장시키실 때는 알고 있던 지식과 사람과 경험이 신뢰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 일차적으로 실패감을 느끼겠지만 실패의 경험은 오히려 사람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서 다시 말합니다.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3:14」 돈으로는 지혜를 살 수 없지만, 지혜가 경제에 가서 굴러다니면 돈을 만들기도 할 것입니다.

 

19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이 지혜와 지식으로 땅과 하늘을 만드셨고 바다와 대기와 기상을 만드신 것을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 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3:19,20」 이것에 대한 증명은 계몽주의 이후 자연과학이 독점해 왔습니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한계는 하나님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과학이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을 측정하거나 규명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세계의 구조 중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배꼽을 증명할 수 있으나 배꼽이 사람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과학은 현상을 관찰하지만, 현상의 원초적 원인에 대해서는 어떤 과학자도 알지 못합니다. 과학이 창조주를 부정한다면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현상에만 몰두하는 게임이 될 것입니다. 물론 과학의 테두리 안에서는 종교의 테두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인정하지는 못하겠지만, 진정 현상을 탐구한 과학자라면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광학적 기술 없이 눈이 존재할 리가 없고 소리에 대한 지식 없이 귀가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세계에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지성적 존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뉴턴이 위대한 자연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히브리서의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13:8 」 이라는 성경적 확신 안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뉴턴은 그 영적 지혜로 물리의 세계를 규명한 것입니다. 과학이 법칙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자연과 우주 질서를 통해 하나님을 인정해야만 하고 성도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인 과학을 탐구하고 알아야 합니다. 영성 없는 지식만으로는 보이는 것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할 것이고, 지성 없이 영성만 추구하다 보면 엉뚱한 곳에서 소리만 지르게 될 것입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가면 안 되고 지성과 영성이 함께 가야 합니다.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