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가는 날, 깔끔하게 차려입고 공항에 갔다. 수속이 끝나면 커피 한 잔의 여유가 기다리고 있겠지. 그러나 탑승 수속 직원에게서 여권 기간이 만료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당황했지만 의심의 여지 없이 내가 옛날 여권을 가지고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모른 채 유효기간이 지난 여권으로 PCR 검사를 받았고 항공권을 예약했다. 닭 쫓던 공항에서 지붕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쳐다보며 기죽은 강아지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새 여권을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여권을 새롭게 발급받은 사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당황했다. 그런 줄 알았으면 공항 출장 영사관에 가서 부탁이라도 해볼 일이었다. 그날의 운명은 실타래처럼 꼬였다. 비행기는 한정되어 있고 PCR 검사증도 곧 유효기간이 끝난다. 게다가 병원은 휴진이다. 영사관과 한 번 통화를 하는 것은 외무고시에 합격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4시간을 기다려서 임시여권을 받았다. 아자부주방에서 시노노메 병원으로 뛰었다. 휴진이던 의사를 불러놓고 PCR 검사증의 여권번호를 수정하고 그간 여행사 직원의 퇴근을 막아놓고 다음 날 항공권을 예매했다.
재앙 같은 일정이 끝나고 나니 밤이 되었다. 카메라 앞에서 혼자 몇 편의 설교를 하고 나니 날이 밝았다. 아침 교회로 온 집사님이 차로 동경역에 바래다주지 않았으면 바뀐 리무진 정류장을 찾지 못해 또 늦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것이 아슬아슬했다.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안에서 아침 묵상을 썼다.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나니 차에서 내려야 했다. 공항에서의 기분은 여행자의 기분이 아니라 난민자의 기분이었다. 피해망상인가. 모든 질문은 취조로 들렸고 어떤 제한을 당할지 몰라 두려웠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 비행기를 탔으니까. 하늘길은 한산했고 내가 탄 비행기만 캡슐에 싸여 하늘 위에 던져진 종이 비행기처럼 날았다. 언제부턴가 피곤해도 낮잠은 자지 못한다. 눈을 감아도 잠들지 않는다. 인생이 고생이라더니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고생이다. 오늘은 집에 가도 어머니의 저녁은 없다. 어머니는 항암치료를 위해 서울에 있다. 썰렁한 고향 집이라서 좀 서럽고 동경에 두고 온 집 생각이 나서 또 서럽다. 인생은 나그넷길이고 나그네는 언제나 그렇다. 집 떠나 혼자 투병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또 서럽다. 한국은 대단했다. 팬데믹이 만들어 놓은 밀폐된 동선을 따라 빨랫줄을 잡고 미끄러지듯 집에 도착했다. 다시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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