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다가와는 1940년 동경에서 열릴 예정이던 올림픽을 위한 정화사업으로 강제 이주되었던 재일조선인들이 살던 지역입니다. 1991년 모교회인 아다치 사랑의 교회에 의해 예배가 시작되었고 이곳에서 30년을 예배해 왔습니다. 교회는 매립지 블록의 막다른 골목에 있었습니다. 교회가 빌려 쓰는 공간은 13평 남짓으로 아주 작고 좁은 교회였습니다.
한 달 전 뇌출혈로 쓰러진 시게미치(최)자매는 에다가와 1초메에 있는 공장에 다녔습니다. 공장에 출근하기 전 새벽기도에 출석하여 햇볕이 드는 교회로 이사 갈 수 있기를 항상 기도했습니다. 교회가 북향 건물의 1층으로 종일 볕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출근한 자매는 햇볕이 잘 드는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그 햇볕을 받을 때마다 어둡고 습한 교회가 마음에 쓰였나 봅니다. 우연일까요? 칠순 자매가 일하던 공장은 교회가 인수하여 예배당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햇볕이 잘 드는 100평 건물을 가졌고 이제 예배를 위해 아이들을 공원으로 내몰지 않아도 됩니다.
교회 재정은 구입을 위해 당초 제시된 금액의 50분의 1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시작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습니다. 몇 번의 도전이 있었지만 번번히 좌절되었습니다. 교단의 도움을 받아 구입 활동을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해당 건물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적은 수의 성도는 헌당을 위하여 최선의 것으로 드렸습니다. 빚을 내서 헌금하겠다는 성도를 목사는 말렸습니다. 얼굴을 본 적도 없는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동경에 교회 건물을 세운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헌금을 보내어 주었습니다.
건물을 교회에게 매각한 주인은 재일교포였는데 해방 후 언니는 한국으로 갔고 자신은 일본에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간 언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일생 선교사로 살았다고 합니다. 어딘가에 숨어 있던 기도들이 지금 형태가 되어 드러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삭이 만났던 넓은 땅 르호봇에서 에다가와 사랑의 교회는 다시 30년의 예배와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30년 후 다음 세대가 열매를 보고 기뻐할 수 있도록 우리도 여기저기에 기도를 심어 놓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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