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요한일서2장 1~11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2: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2: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2: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바 말씀이거니와
2: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2: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2: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2: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율법에 대한 오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이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공로주의 즉 스스로의 노력으로 죄를 극복하거나 죄에서 분리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오해는 율법은 사랑과는 관련이 없는 형식이나 억압이므로 폐기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둘 다 치우친 이해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원칙적 규범이 존재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는 지양해야 하고 우리에게 부족한 이웃과 사회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지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선한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내면과 사회와 믿음을 지키는 원리로 작용합니다. 규범과 계명은 중요한 가치라는 이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이 구원의 방도 즉 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불완전성을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율법에서 구원을 논하는 것은 성급합니다. 율법의 정신은 먼저 하니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론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이 계명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율법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합당해지라는 말입니다. 계명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고 율법은 사랑과 충동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되 자기본위적이고 이기적으로 믿는 사람들은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 충돌할 뿐입니다.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라는 말의 반대편에 있는 말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요한이 말하려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9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11」

 

사랑은 먼저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를 마음속에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것을 둘러싸고 이미 깊어져 버린 자신의 감정을 미워하고 형제를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의 경험상 그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그리스도의 사랑의 크기를 조금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46」 고 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2」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드려졌고 그것을 믿는 성도라면 마땅히 드려졌던 화목제물을 받아와서 소원해진 이웃들을 초청하여 성찬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십자가는 법적 근거입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의 삶에서 집행되는 것은 우리가 서로 용서할 때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은혜의 집행을 당부하셨습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2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