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12~20
13:12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3:18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3:19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고대 중동에서는 샌들과 같은 신을 신었고 흙먼지에 발이 더러워지면 집에 들어가기 전에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노예제도가 있던 시대에 주인의 발을 씻기는 것은 노예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손님을 맞이할 때 발을 씻어주는 것은 환대의 의미였고 노예를 부리는 가정에서는 노예가 주인과 손님의 발을 씻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으니, 제자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황송함이었습니다. 세족이 끝난 후 예수님은 세족의 의미를 말씀해 주시고 제자들에게 서로의 발을 씻기라고 하셨습니다. 노예가 해야 할 일을 예수님이 직접 모범을 보여 하셨으니 서로의 발을 씻기라는 명령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세족식은 낯설지 않습니다. 섬기겠다는 다짐으로 목사가 성도의 발을 씻기기도 하고 교회학교 교사가 아이들의 발을 씻기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섬기겠다는 다짐이 새로워집니다. 발을 만져주고 씻겨주는 것은 겸손이며 존중이며 친밀함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식이고 이벤트입니다. 일 년에 한번 세족식을 할 때 남의 발이 더러워서 씻기지 못하겠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지만, 저 사람이 싫어서 더는 이 교회 못 나오겠다는 사람은 수없이 보았습니다. 세족식은 할 수 있지만 형제의 미운 것을 씻어주는 일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성찬식이 물리적 의미의 빵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 성도의 몸 안에서 연합하는 화학적 작용이라면 세족식은 물로 형제의 발을 씻는 물리적 세척이 아니고 용서와 용납으로 서로를 끌어안으라는 관계의 정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미운 그 사람을 받아들이고 안아줄 수 없는 세족식은 무의미합니다.
한국어로 나쁜 일을 그만둔다는 의미로 「손을 씻는다」는 말을 하지만, 일본어로는 「발을 씻는다(足を洗う)」고 표현합니다. 서로 싸우는 일을 멈추고 서로의 발을 씻겨서 갈등과 분열에서 발을 씻어야(足を洗う) 하지 않겠습니까? 이른바 각각 보수와 진보를 지지한다는 기독교(基督教)인들이 그리스도(基督)의 가르침(教)을 따라 광장에 세숫대야를 가져다 놓고 세족식을 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