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1-13
19: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19:2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19: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19: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19: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19: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19: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19: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19:9 다시 관청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9: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9: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9: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9: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요한복음 묵상을 통해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는 것 역시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며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를 못 박은 것을, 그 판결을 내린 것을 기억함과 동시에 그 십자가를 기억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정말 빌라도인지, 우리에게 다시금 생각 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유대의 총독이라는 자리는 분명 사형 집행의 권한을 가진 자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을 가진 자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듯, 그 권한은 위에서, 즉 하나님께서 주신 권한입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주신 권한을 가졌음에도 빌라도가 두려워 한 것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지 않는다면 로마의 반역자를 사형시키지 않았다는 죄를 빌라도에게 적용시키려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빌라도는, 높은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가바다에 스스로 앉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를 향해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높은 곳,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십자가 형을 선고 하였던 빌라도의 죄는 막중합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그 빌라도의 앞에 예수님을 끌고 온 자들의 죄가 더욱 더 큰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 자리로 끌고 온 유대인들, 우리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당시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고발하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하여야 합니다. 어째서 하나님께서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는지, 왜 그 일을 허락하셨는지, 그것은 자신을 넘겨 준 더 큰 죄를 지은 자들을 용서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라며 소리칩니다. 그렇게 그들의 죄는 더 커져만 갑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 죄를 예수님께서 지고 가셔야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하면 할수록,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만 하였듯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죄가, 지금도 유대인들과 같이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라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빌라도만의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못 박으라고 소리치던 유대인들만의 일도 아닙니다.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