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4:21~33
4:21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4:22 게르손 자손도 그 종족과 가족을 따라 총계하되
4:23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4:24 게르손 가족의 할 일과 멜 것은 이러하니
4:25 곧 그들은 성막의 앙장들과 회막과 그 덮개와 그 위의 해달의 가죽 덮개와 회막 문장을 메이며
4:26 뜰의 휘장과 및 성막과 단 사면에 있는 뜰의 문장과 그 줄들과 그것에 사용하는 모든 기구를 메이며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맡아 처리할 것이라
4:27 게르손 자손은 그 모든 일 곧 멜 것과 처리할 것에 아론과 그 아들들의 명대로 할 것이니 너희는 그들의 멜 짐을 그들에게 맡길 것이니라
4:28 게르손 자손의 가족들이 회막에서 할 일이 이러하며 그들의 직무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감독할지니라
4:29 너는 므라리 자손도 그 가족과 종족을 따라 계수하되
4:30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4:31 그들이 직무를 따라 회막에서 할 모든 일 곧 그 멜 것이 이러하니 곧 장막의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4:32 뜰 사면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그 말뚝들과 그 줄들과 그 모든 기구들과 무릇 그것에 쓰는 것이라 너희는 그들의 맡아 멜 모든 기구의 명목을 지정하라
4:33 이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의 수하에 있을 므라리 자손의 가족들이 그 모든 사무대로 회막에서 행할 일이니라
성막을 운반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이동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의 백성들은 광야에서는 잠시 머무르지만 다시 떠나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성막도 이동해야 했습니다. 이동은 번거러운 일이었겠지만 떠남과 머뭄을 정하는 것도 하나님이었고 백성들이 이동 할 때 가장 먼저 중요하게 챙겨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인 성막이었습니다. 순례의 길을 가는 성도들은 한 군데 머무를 수 없지만 성막이 함께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머물러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막의 운반은 아무나 할 수 없었습니다. 레위 지파 중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의 직무와 역할 분담에 대한 지시입니다. 게르손 자손은 성막의 장막, 휘장, 덮개, 뜰의 휘장 등을 운반하고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널판, 기둥, 받침, 줄 등을 운반합니다. 게르손은 소프트웨어, 므라리는 하드웨어를 운반한 것입니다. 므라리는 토목반이고 게르손은 건축반인가 봅니다. 이들의 직무는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감독하였고, 각자의 역할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거룩한 질서 안에서 수행되었습니다.
성막과 관련된 이러한 규정은 제한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허용이었습니다. 아무나 손댈 수 없다는 것은 접촉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으로만 접촉할 수 있다는 특별한 허락입니다. 왜 나는 안 되는가가 아니라, 특정한 방법을 통해서 열어주셨다는 것을 묵상하는 것이 맞습니다. 거룩에 이르는 길은 인간이 적극적 행위가 아니고 언제나 하나님이 여시는 통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사무엘하 6장에서 웃사가 법궤가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손을 댓다가 죽었던 것도 오늘 본문의 규정에 근거한 것입니다. 웃사는 법궤가 걱정되어서 그것을 붙잡으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웃사는 그 일로 인해서 죽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에게 범접할 수 있는 인간의 위치를 만납니다. 성막이 하나님의 임재라고 말하지만, 인간은 본래 그 임재에 다가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접촉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고 허용한 길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길입니다. 이 제한과 구별을 다시 말하면 유일하고 특별한 은혜입니다.
ETC예배는 빌린 공간을 전전해야하는 예배입니다. 예배와 교제에 필요한 것을 가지고 이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운반하는 물건들이 빌린 공간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예배를 시작할 때 하나님이 그 자리에 임재하십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공간 때문이 아니고 물건 때문도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도록, 인간이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전히 제한된 채로 하나님에게로 나가는 길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예배의 장치를 가지고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