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1~10
14: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14: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14: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14: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14: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14:6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14: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14: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14: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정탐한 사람들의 보고를 듣고 밤새 통곡합니다. 그러나 민수기에 기술된 보고는 그리 길지도 않고 자세하지도 않으며, 보고 자체가 추상적이고 과장되어 있습니다. 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보고서는 진다는 논리밖에 없습니다. 패배주의자들의 현실 인식은 인지 왜곡입니다. 안 되는 이유부터 찾습니다. 겁이 많으면서 논리적인 사람은 비겁의 이유를 사람들에게 설득합니다.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그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편파적이고 왜곡된 정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현실보다 과장된 공포를 전염시킵니다. 비겁한 거짓 뉴스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그것에 속아 편을 나누어 싸우는 사람들의 한심한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차라리 이집트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말합니다. 거짓말입니다. 겁쟁이들은 살려만 준다면 무슨 일이든지 합니다. 먹여만 주면, 노예라도 괜찮고 살려만 주면, 부랑자라도 괜찮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말에 현실 안주, 위기 모면하려는 말입니다. 흥분한 백성들은 「여호와가 우리를 죽이려고 이 땅으로 끌고 왔다」고 말합니다. 본색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먹을 것과 안전을 섬겼지 하나님을 섬긴 적이 없습니다. 공동체가 위기를 맞은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공동체 안에 가짜를 드러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라고 가나안에 들여보내시는데 백성들은 살아보겠다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다가 거기서 죽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고 그들에게 대항합니다.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어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전력을 비교한 후에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한 것도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을 찢은 것은 정탐꾼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이겨 먹는 것은 항상 현실입니다. 그 현실이라는 것은 틀림없이 보신을 위한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믿음과 용기는 같은 말입니다. 두 용기 있는 믿음의 청년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현실을 이기는 믿음을 찾아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기를 가진 소수의 믿음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백성들을 자립시키기 위해 광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사회에서 자립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광야의 백성들은 자립을 위한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고 도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분노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립하기 위한 도전이 무서워서 노예로 돌아가자는 겁쟁이들에 대해서 더욱 분노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에 비하면 자기들은 메뚜기 같다고 했던 그들의 자기 인식은 참으로 사실이었습니다. 웬만하면 하나님을 만난다는 그 광야에서조차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소멸했던 불쌍한 메뚜기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