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2:15~30
22:15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귀족들을 더 많이 보내매
22:16 그들이 발람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십볼의 아들 발락의 말씀에 청컨대 아무 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22:17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케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22:18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발락이 그 집에 은 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22:19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 보리라
22:20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22:21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 행하니
22:22 그가 행함을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타고 그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22:23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떠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22:24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22:25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비비어 상하게 하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22:26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22:27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의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 지라
22: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
22:29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는 연고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22: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네가 오늘까지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든지 네게 이같이 하는 행습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느니라
어제 본문을 잘못 설정한 것 같다. 어제는 발람이 모압 왕 발락의 첫 번째 저주 요청을 거절하는 장면(14절까지)이었다. 발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었고, 이스라엘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명확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다시 더 좋은 조건이 제시되자, 발람은 하나님의 뜻을 다시 묻겠다고 말하며 마음의 번복을 예고한다. 결국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러 길을 떠난다.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확대해, 「가도 된다」는 허락으로 변개했을 것이다. 말씀을 듣고도 지키지 않으려는 사람은, 결국 말씀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길을 나선 발람 앞에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들고 막아서지만,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반면, 그가 타고 있던 나귀는 세 번이나 사자를 보고 반응한다. 처음에는 밭으로 피하고, 두 번째는 담에 발람의 발을 비비며, 세 번째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어 그 자리에 엎드려 버린다. 영적인 감각이 완전히 닫힌 발람은 이 상황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분노에 휩싸여 나귀를 세 번이나 때린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지 못하고, 말 못 하는 짐승은 하나님을 본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여시고 말씀하게 하신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세 번이나 나를 때리느냐?」 발람은 화가 나서 「내 손에 칼이 있었더라면 너를 죽였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나귀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되묻는다. 「나는 네가 평생 타고 다닌 나귀가 아니냐? 내가 이런 행동을 한 적이 있었더냐?」 이는 곧, 네가 모르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나귀의 친절한 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던 발람은 이제 말 못 하는 짐승에게 교훈을 듣는 자가 되었다. 견리망의(見利忘義), 욕심에 붙들린 순간 정의는 마비된다. 인간의 욕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고 그것을 위해 변개하고 합리화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욕심은 사람을 그렇게 어리석게 만든다.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던 이가, 욕심을 위해 성경 한 구절을 끌어와 반복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지록위마(指鹿為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고 해서, 사슴이 말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왜곡하고, 이익을 위해 거짓을 참이라 말하는 것이 어리석음의 절정이다. 일본어에서 가장 심한 욕으로 쓰이는 바카(馬鹿)라는 말의 한자는 「말과 사슴」이다. 지록위마에서 온 말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손바닥으로 가리려는 사람, 그것이 나귀에게 배워야 하는 참된 바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AAtfHAVk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