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9:12~40
29:12 칠 월 십 오 일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칠 일 동안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라
29:13 너희 번제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리되 수송아지 열 셋과 수양 둘과 일 년된 수양 열 넷을 다 흠 없는 것으로 드릴 것이며
29:14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수송아지 열 셋에는 각기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수양 둘에는 각기 에바 십분지 이요
29:15 어린 양 열 넷에는 각기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29:16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29:17 둘째 날에는 수송아지 열 둘과 수양 둘과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29:18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29:19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29:20 세째 날에는 수송아지 열 하나와 수양 둘과 일 년 되고 흠없는 수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29:21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29:22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29:23 네째 날에는 수송아지 열과 수양 둘과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29:24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29:25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29:26 다섯째 날에는 수송아지 아홉과 수양 둘과 일 년 되고 흠없는 수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29:27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29:28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29:29 여섯째 날에는 수송아지 여덟과 수양 둘과 일 년 되고 흠없는 수 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29:30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29:31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29:32 일곱째 날에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둘과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29:33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29:34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29:35 여덟째 날에는 거룩한 대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29:36 번제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리되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일곱을 드릴 것이며
29:37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29:38 또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29:39 너희가 이 절기를 당하거든 여호와께 이같이 드릴지니 이는 너희 서원제나 낙헌제외에 번제, 소제, 전제, 화목제를 드릴 것이니라
29:40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로 명하신 모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일곱째 달 열다섯 날에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수확을 기뻐하는 농경의 의미로 이 초막절을 지키고 있지만, 본래 이 절기의 목적은 풍요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광야에서의 임시 거처 속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초막은 인간의 불완전한 현실을 말하는 것이지만, 초막절은 그 안에 임하신 완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원점으로 돌아가 순수를 회복하겠다는 몸부림입니다. 의미를 상실하고 변질되기 쉬운 인간이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신앙의 본질을 다시 붙드는 거룩한 복기(復記)와 같은 것입니다.
초막절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많은 제물을 드립니다. 물질을 드리는 행위 없이는 제사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물질 안에 인간이 부여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상대화하지 않고는 신앙에 부여한 가치를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 백성들의 헌신을 확인하십니다. 종교가 물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예배자라면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가장 먼저 하나님의 것이라 고백하며 드리는 삶의 우선순위를 실천합니다. 그것은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그리고 아낌없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소진되고 사용됩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초막절 마지막 날,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오라”(요 7:37)고 외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직접 초막절의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구속사적 해석을 해 주신 것입니다. 초막절에 기억해야 하는 광야의 동행, 반복된 희생제사, 물 없는 땅에서 생명을 주시는 능력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는 구속의 서사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목마른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그러나 그 갈증은 물질의 결핍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한 존재의 갈증일 것입니다. 초막절이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는 것이라면, 예수님은 이제 그 임재 자체가 되어 우리의 존재를 채우시는 분입니다. 인간은 바닷물 같은 세상을 마시며 끝없이 목말라 하며 살지만, 그 욕심의 갈증이 해소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안식과 해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분은 초막처럼 불완전한 우리에게 찾아오신 완전하신 하나님의 은혜, 지금도 메마른 존재 사이로 생명을 흘려보내는 살아 있는 생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