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3:1~37
33:1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의 관할하에 그 항오대로 애굽 땅에서 나오던 때의 노정이 이러하니라
33:2 모세가 여호와의 명대로 그 노정을 따라 그 진행한 것을 기록하였으니 그 진행한 대로 그 노정은 이러하니라
33:3 그들이 정월 십 오 일에 라암셋에서 발행하였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
33:4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
33:5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진 쳤고
33:6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진 쳤고
33:7 에담에서 발행하여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가서 믹돌 앞에 진 쳤고
33:8 하히롯 앞에서 발행하여 바다 가운데로 지나 광야에 이르고 에담 광야로 삼 일 길쯤 들어가서 마라에 진쳤고
33:9 마라에서 발행하여 엘림에 이르니 엘림에는 샘물 열 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으므로 거기 진쳤고
33:10 엘림에서 발행하여 홍해 가에 진쳤고
33:11 홍해 가에서 발행하여 신 광야에 진쳤고
33:12 신 광야에서 발행하여
33:13 돕 가에 진쳤고 돕가에서 발행하여 알루스에 진쳤고
33:14 알루스에서 발행하여 르비딤에 진쳤는데 거기는 백성의 마실 물이 없었더라
33:15 르비딤에서 발행하여 시내 광야에 진쳤고
33:16 시내 광야에서 발행하여 기브롯핫다아와에 진쳤고
33:17 기브롯핫다아와에서 발행하여 하세롯에 진쳤고
33:18 하세롯에서 발행하여 릿마에 진쳤고
33:19 릿마에서 발행하여 림몬베레스에 진쳤고
33:20 림몬베레스에서 발행하여 립나에 진쳤고
33:21 립나에서 발행하여 릿사에 진쳤고
33:22 릿사에서 발행하여 그헬라다에 진쳤고
33:23 그헬라다에서 발행하여 세벨산에 진쳤고
33:24 세벨산에서 발행하여 하라다에 진쳤고
33:25 하라다에서 발행하여 막헬롯에 진쳤고
33:26 막헬롯에서 발행하여 다핫에 진쳤고
33:27 다핫에서 발행하여 데라에 진쳤고
33:28 데라에서 발행하여 밋가에 진쳤고
33:29 밋가에서 발행하여 하스모나에 진쳤고
33:30 하스모나에서 발행하여 모세롯에 진쳤고
33:31 모세롯에서 발행하여 브네야아간에 진쳤고
33:32 브네야아간에서 발행하여 홀하깃갓에 진쳤고
33:33 홀하깃갓에서 발행하여 욧바다에 진쳤고
33:34 욧바다에서 발행하여 아브로나에 진쳤고
33:35 아브로나에서 발행하여 에시온게벨에 진쳤고
33:36 에시온게벨에서 발행하여 신 광야 곧 가데스에 진쳤고
33:37 가데스에서 발행하여 에돔 국경 호르산에 진쳤더라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갈 목전에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아야 했다. 과거 지향이나 집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나온 시간을 넓은 시야로 조망하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신앙은 정리되지 않는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입구까지 도달하기까지의 경로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이동과 이동 사이에 들어 있는 이야기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반석에서 물을 마시고, 진노 중에도 멸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죽을 만하면 다시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을 그 골목골목마다 만났다.
그러나 인간은 마라에서 불평하고, 시내산에서 금송아지에게 예배하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약속을 믿지 않고 통곡했다. 먹고 마시는 문제로 끊임없이 낙심하고 원망했다. 그래서 다람쥐 쳇바퀴를 돌았던 것이 40년이다. 열 재앙을 보았고, 유월절의 구원을 경험했고, 홍해를 건넜던 놀라운 간증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곱하기 0을 한 것뿐이다. 누구보다 역동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했던 1세대는 광야에서 죽었다.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속을 믿은 사람은 들어갔다. 약속이 있고 없음은 삶의 태도로 드러났다. 약속을 믿지 않은 사람과 믿은 사람의 차이는 “안 된다”고 포기하는 사람과 “된다”고 도전하는 사람의 차이였다.
실제적인 믿음을 확인할 수 없어서 ‘실천적 무신론자’라는 냉소적인 말을 한다. 믿는다고 말하지만, 삶에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을 보면 무신론자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약속의 말씀을 읽지 않는다. 그 말씀으로 약속을 맺지도 않는다. 세속적 욕심을 하나님께 가지고 와서 자기 욕심을 위해 약속하자고 생떼를 쓸 뿐이다. 교회와 예배를 떠난 이들이 꼭 하는 말은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를 유신론자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들은 실천적 무신론자가 아니라 관념적 유신론자들이다. 그러나 둘 다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현재의 삶 속에서 신뢰하고, 그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약속을 붙들고 살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 즉 시류와는 다르게 말했고, 다르게 행동했다.
신앙을 세상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은 광야에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시다가 거기서 죽을 것이다.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 나에게는 약속이 있는가? 나에게 약속이 있고, 그것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가? 나의 이동은 약속을 향한 이동인가, 세상 속의 방황인가? 그것은 출애굽의 이동 때마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물으신 것이다. 나의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 묻고 계신 하나님께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