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5:1~10
75:1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사를 전파하나이다
75:2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을 당하면 정의로 판단하리니
75:3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거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셀라)
75:4 내가 오만한 자더러 오만히 행치말라 하며 행악자더러 뿔을 들지말라 하였노니
75:5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75:6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75:7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75:8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끼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75:9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75:10 또 악인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시편 75편은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을 선포하며, 정하신 때에 교만한 자를 꺾고 의인을 높이시겠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 시편을 읽을 때, 자신을 자동적으로 ‘의인’의 자리에 위치시킨다는 것이다. ‘누가 악인인가?’라는 질문이 없다. 바로 이 무의식적인 자기 전제 때문에, 시편은 우리 안에서 더 이상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저들’에게로 향하고, 독자는 그 심판과 상관없는 안전지대에 앉는다. 정의를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죄와 분노의 핏대가 서 있다. “뿔을 들지 말라”,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조차, 자기가 미워하는 누군가를 떠올릴 뿐, 자기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정직하게 시편을 읽어본 적이 없다.
이 시편은 분명히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타인을 겨누는 칼이 아니라, 자기를 해체하는 도끼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바깥에 있지 않다. 그 심판은 하나님 앞에 선 나 자신의 교만과 자기의에 대한 것이다. 처음부터 의인과 악인의 이분법은 가당치 않은 것이었다. 모든 인간은 절대적인 의인도, 절대적인 악인도 아니다. 악인은 거울 안에 산다.
오늘 묵상 제목을 ‘존재하지 않는 악인’이라고 한 것은 악인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모두가 스스로를 의인이라 여기므로 악인이 실종되는 영적 모순을 비꼬아 본 것이다. 시편을 읽으려면 타자를 겨냥한 정죄와 저주가 아니라, 스스로를 정직하게 직면하는 애가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혹시 존재적 위치 전복에 성공했다면 75편을 다시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