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5:1~13
85:1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로 돌아오게 하셨으며
85: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저희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셀라)
85:3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85:4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85:5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발분하시겠나이까
85:6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
85:7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85:8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대저 그 백성 그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저희는 다시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85: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이에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
85:10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85: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
85: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85:13 의가 주의 앞에 앞서 행하며 주의 종적으로 길을 삼으리로다
신앙의 실패는 그들을 고통스럽게 했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새로운 회복이 시작되었다. 정황으로 봐서 바벨론 포로가 끝나고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위해서 돌아오는 사람들의 노래인 것 같다. 회복을 향한 그들의 의지와 소원은 특별해 보이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넓고 깊어졌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회복한다는 것은 과거로 원상복구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돌아가서는 안된다. 기억하고 성찰하고 새롭게 해서 앞으로 나가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의 생각 하나 바꾸기 위해서 제국을 세웠다가 무너뜨리기도 하신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그 소용돌이 안에서 인간은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타락하고 부패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자기 편이라고 고집부리고 있었고, 결국 망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편이실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결코 부패와 타락과 우상숭배와는 한 편이 되지 않으신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자신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반복되는 호소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듣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망가진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의 삶도 망가뜨렸다. 하나님, 내 편이 되어 주세요! 가 아니라 하나님, 내가 하나님 편이 되겠습니다! 고 기도했어야 한다.
그 고통의 시간 동안 겨우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85:10 긍휼과 진리와 같이 만난다고 했다. 진리는 변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기둥처럼 서 있다. 동시에 긍휼도 함께 가지고 계신다.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춘다고 했다.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불의를 잘라 낼 칼을 들고 있다. 그래서 피를 흘린다. 사람들이 하는 방식은 그렇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식은 그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춘다고 했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지만 동시에 화평을 주시는 분이다. 진리만의 하나님도 아니고, 자비만의 하나님도 아니다. 의로움만 가지신 하나님이 아니고 평화만 가지신 하나님도 아니다.
치우치기를 잘하는 인간의 이성과 감정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영의 사람들은 그것을 배우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은 말이 아닌 경험을 통해서 분명한 해답을 찾았다. 그들은 불의하였고 고통당했지만, 자비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시 평화를 주셨다. 하나님은 사랑하시지만 때리기도 하셨고, 때리시지만 자비를 놓으신 적이 없다.
가장 어리석은 것은 이 사이클을 반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겸비하면, 고통의 수레바퀴 안으로 말려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이제 회복된 자리에서 더 크신 하나님을 섬길 것이고 하나님의 편에 서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