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4:1~11
14:1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14: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4:3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14:4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무릇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많은대로 응답하리니
14:5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 우상으로 인하여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의 마음에 먹은대로 그들을 잡으려 함이니라
14:6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이켜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14:7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 중에 무릇 나를 떠나고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자기를 위하여 내게 묻고자 하여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친히 응답하여
14:8 그 사람을 대적하여 그들로 놀라움과 감계와 속담거리가 되게 하여 내 백성 가운데서 끊으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14:9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로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어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를 멸할 것이라
14:10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14:11 이는 이스라엘 족속으로 다시는 미혹하여 나를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볼 줄 안다.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 존재의 거울이고 기준이시기 때문이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은 사람은 자기 내면을 왜곡하여 자기 자신을 속인다. 자기를 속이기도 하고, 자기에게 속기도 한다. 오직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 실체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수학에서 ‘임의의 수’를 설정해서 그 지렛대로 문제를 풀고, 숨어 있던 답을 찾아낸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가끔은 하나님의 존재를 임의의 수로 설정해 볼 수 있다. 파스칼은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살아가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다”라고 말했다. 믿음이 없더라도 믿음을 전제로 삼을 때, 삶의 해석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하나님께 뜻을 묻기 위해 선지자를 찾아오지만, 그들 안에는 거꾸로 우상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하나님을 지렛대 삼으면 불신앙도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지만, 우상을 이미 고정된 값으로 여긴 사람은 하나님을 보고 듣더라도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우상은 종교적 신념이 되고, 경건의 자부심이 되어 하나님을 거절하는 견고한 진이 되어 있다.
하나님은 돌이나 나무로 만든 공예품과 싸우고 계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기 욕망이 만든 우상에게 속은 인간의 내면과 싸우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손으로 우상을 때려 부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내 생각과 마음을 잡고 싸우신다. 그리고 우상과 싸워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자신 안에 있는 우상과 싸워 그것을 때려 부숴야만 하나님도 만날 수 있고,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