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6:15~34
16:15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16:16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16:17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16:18 또 네 수 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16:19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6:20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16:21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붙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16:22 네 어렸을 때에 벌거벗어 적신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 하던 것을 기억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16:2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화 있을 진저 화 있을진저 네가 모든 악을 행한 후에
16:24 너를 위하여 누를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도다
16:25 네가 높은 대를 모든 길 머리에 쌓고 네 아름다움을 가증하게 하여 모든 지나가는 자에게 다리를 벌려 심히 행음하고
16:26 하체가 큰 네 이웃나라 애굽 사람과도 행음하되 심히 음란히 하여 내 노를 격동하였도다
16:27 그러므로 내가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 일용 양식을 감하고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 여자 곧 네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에게 너를 붙여 임의로 하게 하였거늘
16:28 네가 음욕이 차지 아니하여 또 앗수르 사람과 행음하고 그들과 행음하고도 오히려 부족히 여겨
16:29 장사하는 땅 갈대아에까지 심히 행음하되 오히려 족한 줄을 알지못하였느니라
16:30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부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16:31 네가 누를 모든 길 머리에 건축하며 높은 대를 모든 거리에 쌓고도 값을 싫어하니 창기 같지도 않도다
16:32 그 지아비 대신에 외인과 사통하여 간음하는 아내로다
16:33 사람들은 모든 창기에게 선물을 주거늘 오직 너는 네 모든 정든 자에게 선물을 주며 값을 주어서 사방에서 와서 너와 행음하게 하니
16:34 너의 음란함이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함은 행음하려고 너를 따르는 자가 없음이며 또 네가 값을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줌이라 그런즉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은 버려진 고아 같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씻기시고, 입히시고, 세워 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숭고했지만, 사람들은 그 사랑을 당연한 듯 받아 누렸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진정성을 잘 알지 못한다.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냉소는 인간의 본성을 잘 꿰뚫은 말이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으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그 받은 사랑을 기억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받은 것이 많았지만, 아무것도 드리지 않았다.
자신에게 없는 것은 하나님에게 요구했지만, 이미 받은 것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게 바쳤다. 사랑이 당연한 줄 아는 인간은 쉽게 다른 주인을 찾는다. 이미 받은 사랑과 은혜는 세상의 욕망과 맞바꾸고, 하나님께는 더 많은 것과 더 좋은 것을 요구한다. 사랑이 많은 배우자에게 자신의 불륜을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짝사랑의 비극이 아무리 애달파도 사랑하는 관계라는 완전함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사랑이 완전해지는 순간은 한쪽이 준 사랑에 다른 쪽이 사랑으로 응답할 때다. 받은 사랑을 사랑으로 되돌려줄 때 비로소 ‘사랑의 관계’가 형성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짝사랑의 고독한 순애보가 아니고, 서로를 존귀히 여기는 언약의 러브스토리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부모의 사랑도 헌신적이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그 일방성에 머무르지 않고 관계 안에서 완성된다.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까지 가야 사랑의 실천과 교육이 완성된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갚지 않는 풍조가 팽배한 현실 속에서도, 사랑의 관계라는 목적과 이상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이들이 어머니 날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을 집에서 내쫓았고, 선물을 사서 들어오라고 했다.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어머니 날이었지만, 그 덕에 나도 덩달아 선물을 받았다. 아이들을 집에서 쫓아낼 때 선물 살 돈은 내가 주었다. ‘엎드려 절받기’였지만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사랑에도 긴장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사랑을 표현하고 그 마음을 드려야 할 때가 되면 좀 더 긴장하게 되지 않을까?
하나님의 사랑을 끝내 깨닫지 못하고, 끝내 그 사랑에 대한 고백과 실천을 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고백하고, 표현하고, 실천하지 않은 사랑은 아직 미완성인 채 남아 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추상적으로 말할 뿐,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의 결론인 구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지만(로마서 10:9~10), 사랑이 믿음보다 크다는데(고린도전서 13:13)…믿음이라는 익숙한 언어 속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