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3:1~21
23: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3:2 인자야 두 여인이 있었으니 한 어미의 딸이라
23:3 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하여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진 바 되었었나니
23:4 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23:5 오홀라가 내게 속하였을 때에 행음하여 그 연애하는 자 곧 그 이웃 앗수르 사람을 사모하였나니
23:6 그들은 다 자색 옷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준수한 소년, 말 타는 자들이라
23:7 그가 앗수르 중에 잘 생긴 그 모든 자들과 행음하고 누구를 연애하든지 그들의 모든 우상으로 스스로 더럽혔으며
23:8 그가 젊었을 때에 애굽 사람과 동침하매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진바 되며 그 몸에 음란을 쏟음을 당한바 되었더니 그가 그때부터 행음함을 마지 아니하였느니라
23:9 그러므로 내가 그를 그 정든 자 곧 그 연애하는 앗수르 사람의 손에 붙였더니
23:10 그들이 그 하체를 드러내고 그 자녀를 빼앗으며 칼로 그를 죽여 그 누명을 여자에게 드러내었나니 이는 그들이 그에게 심문을 행함이니라
23:11 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 형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 형의 간음함보다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 형보다 더 부패하여 졌느니라
23:12 그가 그 이웃 앗수르 사람을 연애하였나니 그들은 화려한 의복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말타는 자들과 준수한 소년이었느니라
23:13 그 두 여인이 한 길로 행하므로 그도 더러워졌음을 내가 보았노라
23:14 그가 음행을 더하였음은 붉은 것으로 벽에 그린 사람의 형상 곧 갈대아 사람의 형상을 보았음이니
23:15 그 형상은 허리를 띠로 동이고 머리를 긴 수건으로 쌌으며 용모는 다 존귀한 자 곧 그 고토 갈대아 바벨론 사람 같은 것이라
23:16 그가 보고 곧 연애하여 사자를 갈대아 그들에게로 보내매
23:17 바벨론 사람이 나아와 연애하는 침상에 올라 음란으로 그를 더럽히매 그가 더럽힘을 입은 후에 그들을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느니라
23:18 그가 이와 같이 그 음행을 나타내며 그 하체를 드러내므로 내 마음이 그 형을 싫어한 것 같이 그를 싫어하였으나
23:19 그가 그 음행을 더하여 그 젊었을때 곧 애굽 땅에서 음행하던 때를 생각하고
23:20 그 하체는 나귀 같고 그 정수는 말 같은 음란한 간부를 연애하였도다
23:21 네가 젊었을 때에 행음하여 애굽 사람에게 네 가슴과 유방이 어루만진바 되었던 것을 오히려 생각하도다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단지 역사 속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언약의 남편으로 두고도, 더 크고 더 강한 제국의 품을 탐했던 모든 시대의 영적 초상이다. 문명의 화려함을 사모하며 하나님을 버리고 그것을 더 사랑했던 마음, 그것이 바로 음행의 실체였고,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라게 하는 원인이었다.
월터 브루그만은 이스라엘의 반복된 배교를 “제국적 상상력에 사로잡힌 결과”라고 했다. 제국의 힘과 번영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였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언약적 상상력을 잠식하는 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동맹은 곧 함정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제국을 사랑했지만 제국의 폭력에 의해 망했다. 그것이 자기 파멸의 길이 된 것이다.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간음의 결과는 항상 똑같다. 파괴와 멸망이다.
하나님 아닌 모든 의존은 우상숭배이며, 결국 인간을 노예로 만든다. 인간은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강한 힘 앞에서 쉽게 비굴해지고, 그것을 사모한다. 정치적 권력, 경제적 자본, 문화적 트렌드는 하나님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는 동안 수많은 제국적 유혹이 우리를 상상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용할 것이지 의지할 대상이 아니다. 말씀에 의지한 영적 상상력으로 소망을 키우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