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8:1~17
8:1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8: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8: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8:4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가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 많으므로 각기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8:5 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
8:6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일이 그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8:8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8: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때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찌어다
8:10 그 날 전에는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였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이 대적을 인하여 출입에 평안치 못하였었나니 이는 내가 뭇 사람으로 서로 치게 하였음이어니와
8:1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전일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8:12 곧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8:13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 가운데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
8:14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전에 너희 열조가 나의 노를 격발할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었으나
8:15 이제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지니라
8:16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8:17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회복 선언이다. 하나님은 다시 그 도성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거리에 늙은 이와 아이들이 함께 거닐고, 평화와 생명이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은 흩어진 백성을 각지에서 불러 모으고,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이전의 불안과 결핍은 사라지고, 포도는 열매를 맺으며 땅은 산물을 내고 하늘은 이슬을 내린다. 회복된 유다는 축복의 통로가 된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화평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이 하실 일과 사람이 할 일은 다르다. 회복자체가 사람의 일이 아니지만 사람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공의와 평화를 따르는 것이다.
7장에서는 금식 문제로 시작된 인간의 외식과 완고함에 대해서 “너희가 돌이키지 않아 내가 분노하였다”고 하셨고, 8장에서는 “내가 시온을 위하여 질투하며 열심을 내었다”고 말씀하셨다. 7장은 진노의 열심이고, 8장은 회복의 열심이다. 그래서 그것은 다 하나님 사랑의 열심이다. 구원의 보장은 인간의 결단이나 지속력에 있지 않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 이사야는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할 때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했다.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열심이 어김없이 그것을 지탱하고 있고, 기어이 그것을 완성시킨다.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것은 구원의 추진력이다. 사람에게는 그 추진력이 없다. 믿을 것은 나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열심이다. 우리는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내거나 지켜내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 안에 붙들린 존재다.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질투라는 것은 고집스러운 사랑을 말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 중에 공유하는 것과 공유하지 않는 것이 있으나 질투하는 사랑이라는 속성은 공유적 속성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것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성간의 사랑에 질투가 없다면 그 사랑의 진위를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랑의 관계는 특별하고 은밀한 것이고, 그 안에서 자발적 헌신이 생겨난다. 사랑에는 집중과 헌신의 배타성이 있다. 그러나 그 배타성은 배제의 폐쇄성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절대적 집중이다. 그래서 순수하다. 그러한 사랑을 버리지 못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죄를 향하고, 회복하시는 열심은 사람을 향한다. 우리의 실패보다 하나님의 열심이 크고, 우리의 무관심보다 그 사랑은 항상 더 깊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은 나의 신실함에 있지 않고, 그분의 열심을 믿는 믿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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