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9:24~51
19:24 다섯째로 아셀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19:25 그 지경 안은 헬갓과 할리와 베덴과 악삽과
19:26 알람멜렉과 아맛과 미살이며 그 경계의 서편은 갈멜에 미치며 시홀 림낫에 미치고
19:27 꺾여 해 돋는 편을 향하여 벧 다곤에 이르며 스불론에 달하고 북편으로 입다 엘 골짜기에 미쳐서 벧에멕과 느이엘에 이르고 가불 좌편으로 나가서
19:28 에브론과 르홉과 함몬과 가나를 지나 큰 시돈까지 이르고
19:29 돌아서 라마와 견고한 성읍 두로에 이르고 돌아서 호사에 이르고 악십 지방 곁 바다가 끝이 되며
19:30 또 움마와 아벡과 르홉이니 모두 이십 이 성읍과 그 촌락이라
19:31 아셀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19:32 여섯째로 납달리 자손을 위하여 납달리 자손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19:33 그 경계는 헬렙과 사아난님의 상수리나무에서부터 아다미 네겝과 얍느엘을 지나 락굼까지요 그 끝은 요단이며
19:34 서편으로 돌아 아스놋 다볼에 이르고 그 곳에서부터 나가 훅곡에 이르러는 남은 스불론에 접하였고 서는 아셀에 접하였으며 해 돋는 편은 유다에 달한 요단이며
19:35 그 견고한 성읍들은 싯딤과 세르와 함맛과 락갓과 긴네렛과
19:36 아다마와 라마와 하솔과
19:37 게데스와 에드레이와 엔 하솔과
19:38 이론과 믹다렐과 호렘과 벧 아낫과 벧 세메스니 모두 십 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라
19:39 납달리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19:40 일곱째로 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19:41 그 기업의 지경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
19:42 사알랍빈과 아얄론과 이들라와
19:43 엘론과 딤나와 에그론과
19:44 엘드게와 깁브돈과 바알랏과
19:45 여훗과 브네브락과 가드 림몬과
19:46 메얄곤과 락곤과 욥바 맞은편 경계까지라
19:47 그런데 단 자손의 지경이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 라가서 레센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음이라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센을 단이라 하였더라
19:48 단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19:49 이스라엘 자손이 그 경계를 따라서 기업의 땅 나누기를 마치고 자기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기업을 주었으되
19:50 곧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의 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세라를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였었더라
19:51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실로에서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아 나눈 기업이 이러하니라 이에 땅 나누는 일이 마쳤더라
땅 분배가 끝났다. 여호수아의 몫은 모든 분배가 끝난 뒤에 주어졌고, 본문은 그것을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구했던 성읍이라고 말한다. 여호수아는 어떤 것을 구하였을까? 그 토지의 크기와 가치는 어떤 것이었을까? 문장에는 여호수아가 그것을 구했다는 말과 함께 “여호와의 말씀대로”라는 말도 있다. 여호수아가 구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받은 것은 ‘땅’이 아니라 ‘성읍’이었다.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것은 통치의 영역이 아니라 거주와 안식의 공간이었다.
여호수아는 은퇴 후 작은 것을 구했고 작은 것을 받았다. 정복과 분배 후에 권력자의 자리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스라엘도 여호수아를 왕으로 세우지 않았다. 여호수아의 기업은 자기 지파 영토 내 딤낫 세라라는 성읍이었다. 딤낫은 정해진 몫이라는 말이고, 세라는 쓰고 남은 것이라는 말이다. 즉 모든 기업을 분배한 후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대장군 여호수아의 몫이었다. 여호수아가 특정 땅을 구하긴 했지만 그것은 갈렙이 구한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갈렙이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사업가였다면 여호수아는 자신을 비운 목회자였다.
탈무드 전통에서는 여호수아를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취하지 않은 지도자로 이해한다. 그는 왕권이나 지파적 특권을 요구하지 않았고, 공동체의 몫이 모두 분배된 뒤에 남은 것 중에 작은 것을 받았다. 그리고 그후에도 잡음이 없다. 할 일을 다하고 지킬 약속을 다 지키고 조용히 사라진 사람이다. 헌신자란 신학교에 들어간 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이 아니고, 자기 사명을 다 마친 사람을 평가할 때 쓰는 말이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한다. 끝까지 헌신이어야 헌신이다. 여호수아는 고생만하다 가나안에 들어오지도 못했던 전임자 모세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딤낫 세라조차 과분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헌신은 헌신의 등을 보고 헌신을 이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