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4:14~24
24: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24:16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24: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의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24: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24:1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24:20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24:21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24:22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24:23 여호수아가 가로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24:24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한지라
여호수아는 마지막 공식 설교에서 과거의 기억을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의 관계, 즉 정체성에 대한 주제를 다시 들고 나온다. 그들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고 혼합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지금 세계관과 신앙을 지켜야 하는 단계가 아니라 형성해 가야 하는 단계에 있다. 그래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로 대표되는 다신론적 세계관, 그리고 지금 가나안의 삶의 방식과 하나님 중에서 무엇을 섬길지를 선택하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먼저 분명하게 선택하고 그것을 공적으로 선언했다. 여호수아 자신과 가정은 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한 용기와 준비가 끝났다고 말한 것이다.
사람들은 여호수아의 선언을 읽으면서 그것이 마땅한 결단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선동의 도구가 아니다. 개인과 가정의 삶과 존재 전체를 걸고 무수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책임을 지겠다는 용기였다. 여호수아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종교적 선택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삶을 지탱해 왔고, 지금도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그 안전한 것과 매력있는 것들을 버려야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은 참 무겁다. 그것은 감정도 아니고 열정도 아니다. 누구를 따라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전 존재를 요구하는 결단이고, 인생을 관통해야 하는 책임이다.
그래서 이 결단은 즐거운 일이 아니라 두려운 일이다. 한 번 동의했고, 아멘이라고 말한 이상,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그 아멘을 실천하며 그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우상은 눈에 보이는 형체를 가지고 있었다지만, 우리가 사는 지금 이곳의 우상은 정교하게 사회 시스템 속에 녹아있다. 우상은 제단 위에 서 있지 않고, 학교, 직장, 시장, 온라인 세계에 자리를 잡고 들어가 있다. 인간은 우상을 의지하지만, 우상은 인간을 파괴한다. 그것이 우상인즐도 모르는 중에 허겁지겁 달려가다 허둥지둥 불안해 하면 사는 것이다. 여호와만 섬긴다는 것은 종교적 소속을 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라”는 명령에 대해서 그것을 어떻게 찾아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말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논리를 거부하겠다는 두려운 다짐이다. 우리는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분만을 섬기는 삶의 구조를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가는 질문 앞에서는 사실 쉽게 말할 수 없다. 여호수아도 백성들의 결단의 아우성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의 대답을 듣고도 “너희는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을 선택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기를 각오한다는 것이고, 위험이 동반되는 것이다. 그 위에서 선택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덩달아 할 말이 아니다. 잘 생각해야 하고, 잘 선택해야 하고, 잘 고백해야 하고, 그리고 그 용기와 다짐과 약속대로 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