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1~12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4: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4:5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한은 일리가 있다고 해서 믿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 영을 분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일리(一理) 있어 보이는 말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분별하고 믿어야 하는 것은 일리가 아니라 진리(真理)이다. 요한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그의 시대에 신앙을 현혹하고 속이는 사상들이 실제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요한일서가 기록되던 1세기 말 헬라 세계에는 영은 고귀하고 육체는 열등하거나 악하다고 여기는 이원론적 사고가 널리 퍼져 있었고, 그 사상은 교회 안에까지 스며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실 리가 없으며, 오직 영적 존재로만 나타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고는 시간이 지나면서 영지주의로 발전하지만, 요한의 시대에는 아직 완성된 교리체계는 아니었다. 다만 당시에 그것이 더 지적으로 세련되고 영적으로도 깊어 보이는 제스추어를 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요한은 예수님을 직접 보고, 만지고, 대화하며 동거동락했고, 육체의 죽음과 부활의 현장까지 동행했던 인간 예수의 산증인이다. 그는 육체와 인격을 지닌 예수님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람 되심, 곧 성육신을 부정하는 가르침에 대해 그는 결코 침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영적 환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원론자들을 향해,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단호하게 일갈하였다. 세상의 사고방식 안에 머물면 사람은 언제나 시대가 제공하는 일리에 따라 쉽게 휩쓸리게 된다. 우리가 사는 시대의 사고방식 또한 한 시대의 단편적인 일리를 합리적이라고 여기며 유행처럼 공유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요한의 영 분별에 대한 어조는 단호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다. 1절부터 6절까지 거짓 영에 대한 분별을 말하다가 7절부터는 갑자기 사랑의 주제로 바뀐다. 요한이 여러 개의 주제를 단락구분없이 병렬적으로 기록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요한은 영 분별에 성공했다면, 그 결과는 반드시 하나님과 실제로 연결된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이야기를 이어 가고 있다. 이미 3장에서 사랑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요한에게서 영 분별은 사랑이라는 주제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포함된 문제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 관계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 존재 방식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이는 하나님이 단지 사랑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사람을 사랑하셔서 사람의 죄를 위하여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셨고, 그 방법이 바로 성육신과 십자가의 사건이었다. 요한은 이 모든 일의 증인이었다. 그러므로 요한에게 성육신은 신학적 논쟁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실제적으로 경험했는가의 문제였다. 인격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신격으로서의 하나님도 참되게 알 수 없다. 신격이신 하나님이 인격이 되어 인격을 지닌 인간을 찾아오셨기 때문에 인간에게 구원과 신앙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가장 영적인 신앙은 언제나 인격 위에 세워진 신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