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말라기
4: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구약의 마지막 책은 말라기이고 그 다음은 신약의 마태복음이다. 성경책으로는 한 장 사이이지만 시간적으로는 400년의 공백이 있다. 400년간 선지자는 오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전해지지도 기록되지도 않았다. 이것을 신구약 중간시대라고 한다. 성경에 언급되지 않는 이 긴 시대 동안에도 인간들은 열심히 살았다. 일상의 분주함을 살았을 것이고 나라들은 뺏고 뺏기기를 거듭했다. 구약의 마지막 말라기의 시대적 배경은 3차 바벨론 귀환이다. 바벨론 귀환이라고 하지만 시대는 페르시아 제국의 시대였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바벨론 제국은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서 망했고 패권을 쥔 페르시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토 팔레스타인으로 돌려보냈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영원한 제국은 없다. 페르시아 제국은 다시 헬라제국의 알렉산더에게 망했다. 30살에 전무한 제국을 만들고 세계를 재패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33살에 죽었다. 알렉산더의 유언은 자기 시체의 팔을 관 밖으로 끄집어 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라는 것이었다. 제국의 제왕도 결국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다. 차표 한 장 가져가지 못한다. 알렉산더는 공수래공수거로 떠났고 알렉산더가 없는 헬라제국은 다시 로마제국에 의해서 망했다. 먹고 먹히는 세계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이스라엘은 그 길고 길었던 400년 동안 식민지배를 받았다. 신약 시대는 정치적으로 로마의 지배기였다. A.D.70년에 로마는 저항하는 이스라엘을 완전하게 멸망시키고 해체시켜버렸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세계사에서 이스라엘이 이토록 절망스러운 것은 인간의 절망을 말하기 위함일 것이다.

 

주일 오후의 세례반 공부에서 3주 동안 성경론, 신론, 인간론을 공부했다. 인간론의 결론은 결코 밝지 않았다. 우리는 거적으로 덮여있던 죄를 들추어 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안에 썩어 있는 것을 부정하고는 인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의 이해는 죄의 이해였다. 구약의 절망이 끝나고 신약이 열리면 마태복음 1장에는 족보가 나온다. 그 족보를 따라 누군가가 태어나는 이야기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여 오신 것이다. 인간의 절망의 끝에 그리스도가 오신다. 세계사적으로 교회가 시작될 무렵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아예 망하고 사라져 버린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 어디로 무슨 이유로 오시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경건의 보상으로 오시지 않는다. 인간의 열심의 댓가로 오시지도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깜깜한 절망의 밤에 오신다.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것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다. 소망 없는 인간의 절규 위에 오신다. 죄의 절망에 묶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다. 구원받으려면 예외 없이 절망을 지나와야 한다. 70년에 망했다가 1948년에 재건된 이스라엘은 내일부터 일주일간 초막절을 지낼 것이다. 절망 가운데 구원받았던 출애굽의 구원의 기억을 기념할 것이다. 우리 교회 세례반은 이번 주일에는 기독론에 대해서 배울 것이다. 인간의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구원의 그리스도가 오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작은 공부 모임 안에서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소망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