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사도행전 26장13~23
26: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26: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26: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26: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26: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26:20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26: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6: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밖에 없으니
26: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은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아그립바 앞에서 간증합니다. 바울의 긴증의 말을 들어보면 바울은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극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변화라는 것은 삶의 목적을 이전 그대로 하고 교회만 다니는 그런 무늬만의 변화는 아니었습니다. 복음으로 변화되었다는 말은 교회에 출석한다거나 이전보다 조금 더 도덕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고 복음을 삶의 가치로 삶고 인생이 추구하는 방향을 전환한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학습을 통해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비참한 한 인간에게 찾아오시고 만나주시는 인격적 경험입니다. 성도의 헌신은 복음을 만난 결과입니다. 헌신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복음을 지적으로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삶은 기득권자에서 핍박받는 입장으로 바뀌었지만 그것도 믿음의 고백과 헌신의 결과일 뿐입니다. 단순합니다.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고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를 바꾼 간증…무엇이 바뀌었습니까?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까? 더 착해졌습니까? 더 좋은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형태이고 한 부분일 뿐이지 실제가 아닙니다. 바울은 예나 지금이나 열심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열심히 사역한 것이 아니고 원래 열심히 살던 사람입니다. 다만 그 열심으로 무엇을 했는가가 중요합니다. 복음을 믿고 그것을 말하고 전하는 삶으로 변화한 것이 바울의 간증입니다. 바울의 위대한 것, 대단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의 시작과 원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