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6:13~28
26:13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26: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
26:15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 하느니라
26:16 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26:17 길로 지나다가 자기에게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26:18 횃불을 던지며 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26:19 자기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26:20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26:21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26:22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 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26:23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26:24 감정있는 자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에는 궤휼을 품나니
26:25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라
26:26 궤휼로 그 감정을 감출지라도 그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26:27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26:28 거짓말하는 자는 자기의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
13절부터 16절까지는 「게으름에 관한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아마도 느긋한 사람이 아닐 겁니다. 몸은 뒹굴거리지만 현실을 도피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은 늘 쫒기는 사람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바쁘다는 말이 평소에 제 할 일을 제때 안 한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만 게으름에 대한 잠언의 표현도 해학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길에 사자가 있다」고 한답니다. 그런데 그것은 게으른 사람의 변명이 아니고 진심일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세상이 무서워서 밖에 나가 정면으로 맞서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불 밖은 위험하고 집 밖에는 사자가 있답니다.
완벽주의자도 게으르고,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도 게으릅니다.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사람도 게으르고, 자신에 대해서 과신하는 사람도 게으릅니다. 누구나 게으릅니다. 자신의 의지만으로 자신을 바꾸겠다는 노력은 아직 자신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이라는 상대는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자신과 싸우려면 아군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게으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마감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마감 시간이 다가와 피가 말라보면 게으름이 무엇인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일단 게으름에서 깨어나는 것이 중요하니 환경의 압박을 최대한 사용하는 것은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두 번째 주제는 「나대지 않는 것」과 「말조심」에 관한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문제는 드러나 보이고 싶어 하는 소영웅심리에서 나올 겁니다. 말은 입 안의 문제가 아니고 생각과 마음 안의 문제입니다. 말수가 적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말을 많이 하면 불완전한 인간은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본전을 드러내기 일쑤입니다. 기본적으로 말살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인격과 마음이 드러날 뿐입니다. 사회적 인간은 입을 조심하는 것으로 자신과 사회적 관계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25장에서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 11」고 했습니다. 정갈하게 절제된 고급스러운 교양입니다. 교회에서 대화를 더욱 맛있게 하기 위해서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권면하기를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골로새서 4:6」 고 했습니다. 상황을 잘 판단하고 서두르지 않고 나대지 않고 배려해서 경우에 맞는 말을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