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7:13~27
27:13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의 보증이 된 자는 그 몸을 볼모로 잡힐지니라
27:14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27:15 다투는 부녀는 비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27:16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
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27:18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27:19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
27:20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27:21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
27:22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
27:23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27:24 대저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27:25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27:26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27:27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 사람의 식물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
요리사가 재료를 자르기 전에 리드미컬하게 칼갈이 봉에 칼을 갈아줍니다. 칼이 철에 부대끼면 날이 날카롭게 서기 때문입니다. 칼은 두부를 무시하여 한 칼에 잘라내지만 두부만 자르다가 보면 고기를 자르지 못할 만큼 날이 무디어집니다. 두부의 복수입니다. 요리할 때 손에 상처를 입히는 칼은 날카로운 칼이 아니고 무딘 칼입니다. 칼은 각성하여 철과 부대끼며 날을 날카롭게 세워야 합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27:17」 칼에게 철과 같은 친구가 있다면 칼은 자기 사명을 충분히 그리고 마지막까지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이 철을 만난다는 것, 그것은 학창 시절의 친구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굳이 철과 같은 친구를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름지기 친구란 아무 조건이 없을 때 맺어지는 것이니까요. 자신이 칼로 살면 철과 같은 사람, 관계와 환경이 나타날 것입니다. 칼은 철이라는 환경을 만날 때 단련되고 준비됩니다. 날 선 칼이 되기를 원하다면 철이 있는 환경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입니다. 편안한 환경이 있는가 하면 긴장된 환경도 있습니다. 두부를 썰다가도 철을 만나 불꽃 튀기는 마찰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러면 연마되어 서슬 퍼런 광채를 발하고 무엇이든 베어버릴 수 있는 날 선 검이 될 것입니다.
어릴 때는 동네 골목에서 놀았습니다. 코흘리개 꼬마들의 사회에도 권력이 있고 질서가 있었습니다. 강한 아이는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했고 약한 아이는 거기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습니다. 후퇴하기도 하고, 연대하기도 하고, 때로 전투하기도 했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경제적 관념도 투철했습니다. 이긴 녀석은 냉정하게 딱지와 구슬을 가져갔습니다.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하면서 경제도 배우고 불의하고 불합리한 상황을 만나면서 인간과 사회를 익혔습니다. 그것이 철의 환경입니다. 그런 철과 같은 경험이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날 선 칼이 되게 해줍니다. 혼자서 말랑말랑한 세계에 빠져 있는 사람은 케이크를 자르기도 힘겨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날카로운 칼이 되려는 인재에게 이 시대는 기회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