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시편 44:9~26
44:9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케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44:10 주께서 우리를 대적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44:11 주께서 우리로 먹힐 양 같게 하시고 열방 중에 흩으셨나이다
44:12 주께서 주의 백성을 무료로 파심이여 저희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44:13 주께서 우리로 이웃에게 욕을 당케 하시니 둘러 있는 자가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44:14 주께서 우리로 열방 중에 말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케 하셨나이다
44:15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44:16 나를 비방하고 후욕하는 소리를 인함이요 나의 원수와 보수자의 연고니이다
44:17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44:18 우리 마음이 퇴축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44:19 주께서 우리를 시랑의 처소에서 심히 상해하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44:2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44:21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44: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44:23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
44:24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고 우리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44:25 우리 영혼은 진토에 구푸리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44: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첫 번째로는 비극으로, 두 번째로는 희극으로.」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다고 합니다. 역사는 리듬을 가지고 흥망성쇠를 반복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무언가가 발전하고 흥하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이미 쇠퇴가 준비되고 있고, 반대로 소망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예기치 않은 부흥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지나고 보면 진정 부끄러운 것은 쇠퇴의 슬픔이 아니고, 흥함의 오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인생에 오만 할 만한 근거가 없고, 굳이 비굴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대를 받아들이는 것이 순종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안으로 던져지고 그 안에서 살아갑니다. 시대의 화려함을 쫓아가지 않고 흥망성쇠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다짐할 뿐입니다. 신학교에 들어갈 즈음, 시대의 기독교는 이미 변곡점을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위로 치솟아 올라가는 거품 중의 일부가 아니라는 생각은 헌신의 위로였습니다.

 

시편 44편이 역사의 몇 페이지쯤에 있는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역사의 사이클 안에서 이전의 영광을 잃어버린 때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방에게 짓밟히고 모욕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오만은 실패를 낳았겠지만, 그렇다고 비굴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굴이 끝나면 다시 오만해질 테니까요. 오만해지지 않겠다는 다짐은 비참한 현실에서도 비굴에 짓눌리지 않고 살아내는 것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표제에서 이 시의 저자는 고라 자손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고라 자손은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기에 그 상실의 크기만큼 하나님에게 가까이 다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뒷춤에 숨기신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 덕분에 고라 자손은 하나님께 가까이 와 있습니다. 상실한 것이 저주가 아니고 하나님께 가까이 간 것이 복입니다. 그러므로 고라 자손의 시대는 은혜의 시대입니다. 가난한 마음에 진실한 탄원을 할 수 있는 영성은 하나님이 그 시대에 주신 상실이라는 은혜 때문입니다.
거품이 걷히고 나면 크든 작든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 보일 것입니다. 거품이 아닌 무게를 가진 믿음으로 가라앉아야 하겠습니다. 「잃은 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상실을 통해 얻은 것들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칼 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