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숲속에서 심한 갈증에 시달리던 질은 무섭고 장엄한 아슬란과 마주졌다.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찾아갔지만, 시냇물 앞에는 무서운 사자 아슬란이 있었던 것이다. 아슬란은 질에게 “목이 마르면 와서 마셔라.”고 말했다. 질은 갈증이 심했지만 사자가 너무 무서웠다. 그녀는 사자의 거룩함을 두려워하여 “도저히 가까이 다가가 물을 마실 수가 없어요.”라고 더듬거렸다. 그러자 사자는 “그러면 갈증으로 인해 죽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가 접근해도 제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실 거라 약속해주세요.” 그런데 아슬란은 “약속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질은 “아, 어쩌나!” 하면서 한숨을 내쉬고는 ,”다른 시냇물을 찾아봐야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자는 “다른 시냇물은 없다.”라고 말했다.

나니아 연대기: 은의자 중에서

사자는 현실의 인간에게 위험하고 낯선 존재이다. C.S 루이스는 하나님을 사자로 묘사하고 있다. 루이스가 아니었다면 후라이드 치킨 가게 앞에 서 있는 할아버지로 묘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루이스는 인간의 입장에서 위험한 하나님, 무서운 하나님, 감히 통제할 수 없는 하나님을 상기시킨다.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빙자한 우상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변형된 신앙을 엄격하게 경계한다.1)  목이 마르면 와서 마시라고 하신다.2)  그러나 목은 마른 데 하나님은 두렵다. 한발 다가가다가 또 두려워서 망설인다. 하나님에게 다가가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에도 하나님은 책임지지 않을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3)  하나님을 만나면 삶은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시냇물을 찾아보겠다는 소녀에게 하나님은 단호하게 다른 시냇물은 없다고 말씀하신다.4)  목을 축일 수 있는 시내는 그곳 밖에 없고 그곳에서 물을 마시면 삶은 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영혼은 갈증으로 인해 시들고 마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이런 지적은 우리가 루이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고 우리가 하나님께 다가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비겁한 사람은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진리와 생명이란 다른 어떤 것과 호환이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어 그 시냇가에 가서 해갈하고 나면 나와 삶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세상과 나는 간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봄과 함께 지나가는 사순절에 하나님께 한발 더 다가가게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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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잠언 14: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2) 요한복음 7:37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4)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