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열왕기상 22:41-53

22:41 이스라엘의 아합 왕 제사년에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니

22:42 여호사밧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이더라

22:43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22:44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과 더불어 화평하니라

22:45 여호사밧의 남은 사적과 그가 부린 권세와 그가 어떻게 전쟁하였는지는 다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2:46 그가 그의 아버지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22:47 그 때에 에돔에는 왕이 없고 섭정 왕이 있었더라

22:48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22:49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내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

22:50 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2:51 유다의 여호사밧 왕 제십칠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22:52 그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22:53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 같이 하였더라

 남유다 왕국의 정직한 왕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남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행한 일들은 그의 아버지가 했던 것과 같이 남색하는 자들을 쫓아내고 유다 왕국을 부흥시키려 한 것입니다.

 일평생을 여호와 앞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성경이 평가하고 있는 아사 왕, 그런 그는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여호사밧’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 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아사의 삶의 오점은 두 가지라고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첫째는 우상들을 제하였지만 산당을 허물지 않은 것, 둘 째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아람의 왕 벤하닷에게 공물을 바치고, 협력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그가 지은 아들의 이름 ‘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는 이름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 자신은 놓치고 있었던 것을 깨닫고 후회하며, 그의 아들에게 붙인 이름, 자신의 아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지은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오늘 본문의 여호사밧의 시작은 그의 아버지와 전혀 다르지 않은, 하나님 앞에는 정직하였지만 산당은 파괴하지 않았고,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하여 이전 솔로몬이 금을 구하였던 오빌로 가는 교역로를 활성화하려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심판하실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사밧에 대하여 아주 짧고 간략하게 다루고 있지만, 다른 본문, 역대하에서는 17장에서 20장에 걸쳐 그의 생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 17장 1절은 그에 대해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어하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사밧의 삶은 그러한 실수 속에서도,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며, 그 길을 따르는 삶이었고, 그 결과 17장 5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라고, 나라를 강하게 하는 주체가 여호사밧에서부터 하나님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뒤의 일은, 그의 아버지가 이루지 못하였던 일, 산당들과 우상들을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의 시작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도,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는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께 구함으로 심판하는 자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그의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 ‘여호와께서 붙잡으셨다’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그는,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지 못하였으며, 그 결과,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그에게 죽음을 선고하시기에 이릅니다.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의 유래는 우리가 들어왔던 것처럼 예수를 믿는 자들, 예수를 믿음으로 고난을 당하는 미련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조롱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주어진 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과연 우리는 얼마나 이 이름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 이름의 의미의 반절 정도만 걸맞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여호사밧 역시, 그의 시작은 반쪽자리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아가고, 경험하며, 말씀을 배워감으로 인해 그는 그 이름에 완전히 걸맞는 자로 성장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꼭 맞는 이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이름을 가지고 하루하루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이름에 걸맞는 자들로, 예수를 믿음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마저 마다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