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느헤미야 9:1~8
9:1 그 달 이십 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9:2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
9:3 이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9:4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대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9:5 또 레위 사람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다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는 이르기를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9: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9:7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9:8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니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하니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사람의 설교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힘이 있습니다. 에스라는 성경을 연구한 학자이고 할 말이 많았겠지만 강의하거나 설교하지 않고 성경을 낭독했습니다. 설명은 최소한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각성한 백성들은 조상들의 죄와 불순종을 회개합니다. 자손이 조상을 대신해서 회개했으니 부끄러운 조상입니다. 살고 갔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평가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를 일입니다. 빈둥거린 조상 대신 고생한 자손이 조상의 죄를 회개합니다. 자랑스럽지 않더라도 부끄럽지는 않아야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백성들이 이 각성의 시간을 그대로 끝낼 수 없어서 다시 금식하고 슬퍼하면서 회개하는 이야기입니다.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3시간 동안 말씀을 읽습니다. 각자 자기 집에서 읽습니다. 앉아서 읽지 않고 똑바로 서서 3시간 동안 성경을 낭독합니다. 금식하면 힘은 빠지지만 정신은 더 명료해집니다. 3시간은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중간에 쉬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50분 수업에 10분 휴식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3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집중하고 나머지 시간을 온전히 다 쉬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집중하고 있는 사람에게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는 귀찮은 방해일 뿐입니다.

■3시간 쉬지 않고 읽으면 성경을 보는 렌즈가 달라집니다. 성경이 종횡으로 이어지고 해석에 통찰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3시간 정도 쉬지 않고 일하거나 공부하는 것은 무리하는 것이 아니고 집중하는 것입니다. 50분 일하면 반드시 쉬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그 몇 배가 되는 시간을 게임에 집중합니다. 50분 술 마시고 10분 쉬는 사람 본 적이 없습니다. 쉬는 시간이라는 것은 그 집중력과 연속성을 방해하고 단절시킵니다. 물론 내적 동기가 없는 사람은 10분 읽고 50분 쉬는 것조차도 힘들어합니다. 그들은 결국 자신 안에 있는 잠재력을 끄집어내지 못합니다.

■3시간의 성경낭독이 끝났다고 해서 쉬는 것도 아닙니다. 낮 사분지 일 즉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는 다시 죄를 토해내고 회개하고 찬양합니다. 금식 중이니 점심식사도 없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겠습니까? 말씀의 깨달음과 영혼의 회개보다 더 큰 은혜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은혜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이 끝날까 봐 오히려 두려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메스가 되어 상한 곳, 썩은 곳, 문드러진 곳, 게으른 곳, 못된 곳, 미련한 곳, 거짓된 곳, 부끄러운 곳들을 도려내면 애통해서 통곡이 나옵니다. 미사여구는 안 나옵니다. 울 때 울어야 찌꺼기가 씻겨 내려갑니다. 애통이 없는 회개는 겸손을 가장한 교만입니다.

■자신의 모든 지성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성경을 읽고, 자신의 모든 감정과 정서를 동원하여 기도하면서 6시간을 보내 본 적 있습니까? 없다면 이들의 신앙의 카타르시스를 공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목사는 자신이 설교를 하니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착각하고, 성도는 설교를 듣고 돌아가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했다고 생각하니 이래저래 설교가 신앙의 적입니다. 세상에 나와 돌아다니는 설교가 다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성경낭독이 있다면 시대의 신앙은 다시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 기적이 일어나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 바쁘고 사람들의 신앙은 주체적이지 않고 어딘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생각하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 삶에서도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