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11~21
2: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2: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2: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2: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많은 사람들이 암송하고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복음에 대한 신앙고백이 분명하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기에 고백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 이유로 결연한 신앙과 헌신의 의지를 말할 때 이 말씀은 자주 인용됩니다.
다만 문장은 전후 사정에 맞추어 문맥 속에 녹여서 읽어야 원래 뜻을 오해 없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장이 전체 문맥의 흐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하는 사건입니다. 베드로가 비유대인 신자들과 식사하다가 유대인들이 다가오자 율법을 의식하여 자리를 피했던 일로 바울이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갈라디아서 2장은 사도행전 15장 이후입니다.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회의에서 유대 율법이 없는 비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을 강요하지 않고 동등한 형제로 인정하겠다는 것은 이미 합의되고 결의된 것입니다. 베드로도 그것에 동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유대인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비유대인들과의 식사 자리를 회피한 것은 그 결의를 무시한 것이고 또한 비유대인 신자를 차별한 것이라는 바울의 비판입니다. 복음보다, 교회의 권위보다, 형제의 존중보다, 유대 율법과 관습을 우위에 둔 비겁하고 위선적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는 비유대인에게도 동일한 신앙과 구원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선교의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사람이 바울이었고, 그것을 공회의에서 발제한 사람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있어 복음은 유대인과 비유대인 모두에게 동일한 은혜의 복음이고, 그것은 바울이 자신의 산 경험을 통해 배운 거부할 수 없는 신학이었습니다.
2장 20절은 바울과 베드로의 이 일종의 갈등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에 보내는 편지에 이 사건에 대해서 쓴 것은 이것을 통해서 복음을 다시 한번 이해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19절에서 바울은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고 했고, 마지막 21절에서는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고 하여 율법 학자 출신인 바울 자신은 율법 준수의 조건이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의 이해를 분명히 했습니다.
20절은 그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20절도 「복음의 이해에 대한 고백」입니다. 어떻게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 이전에 복음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고백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헌신했다는 말이 아니라 십자가의 의미가 내 것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 안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입니다. 2장 20절을 다시 음미하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교회의 시대에 열심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족했던 것은 이해였습니다. 바울이 고백하듯이 이해할 수 있으면 그 이해대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