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6:12~35
16:12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보내었더니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16:13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16:14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16:15 모세가 심히 노하여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는 그들의 예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나는 그들의 한 나귀도 취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의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고
16:16 이에 고라에게 이르되 너와 너의 온 무리는 아론과 함께 내일 여호와 앞으로 나아오되
16:17 너희는 각기 향로를 잡고 그 위에 향을 두고 각 사람이 그 향로를 여호와 앞으로 가져 오라 향로는 모두 이백 오십이라 너와 아론도 각각 향로를 가지고 올지니라
16:18 그들이 각기 향로를 취하여 불을 담고 향을 그 위에 두고 모세와 아론으로 더불어 회막 문에 서니라
16:19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아 놓고 그 두 사람을 대적하려 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나시니라
16:20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16:21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16:22 그 두 사람이 엎드려 가로되 하나님이여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6: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6:24 회중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라 하라
16:25 모세가 일어나 다단과 아비람에게로 가니 이스라엘 장로들이 좇았더라
16:26 모세가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은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 그들의 모든 죄 중에서 너희도 멸망할까 두려워 하노라 하매
16:27 무리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을 떠나고 다단과 아비람은 그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 선지라
16:28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
16:29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일반이요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어니와
16:30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 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16:31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16:32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16:33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 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16:34 그 주위에 있는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하며 가로되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 하였고
16:35 여호와께로서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 오십 인을 소멸하였더라
모세가 고라와 함께 반란에 가담한 다단과 아비람을 불렀으나 그들은 거부하며 공개적으로 모세를 비난합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나온 것이 해방이 아니라 파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려 하느냐」고 말하는데 여기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이 아니라, 노예로 살던 이집트를 말하는 것입니다. 억압당했던 땅을 오히려 풍요의 땅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언어는 구원의 은혜를 부정하고, 과거의 죄악된 상태를 그리워하는 왜곡된 기억입니다. 인간의 절망은 이 무지와 왜곡을 의심하지 않고 확신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을 억압하거나 괴롭힌 대상에게 애착을 느끼는 현상을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살기 위한 자기합리화의 일종인데,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과거를 정당화하는 심리로 과거에 자신에게 고통을 준 대상을 오히려 좋은 대상이었다고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과거를 미화하고, 은혜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인간을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광야의 고난이 깊어질수록 모세를 향한 불만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모세가 공동체를 위해 애쓰는 모든 노력에 대해서 「왕이 되고 싶어서」 라는 비뚤어진 해석을 합니다. 누군가를 비난함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그보다 자신의 정당성을 먼저 증명해야 합니다. 만약 그들이 진심으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걱정했다면, 모세를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과 계획을 제시했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사고와 의식에 대해 책임감 없이 혐오와 비난에 빠진 사람은 교육할 수도, 변화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노래했던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듣지 않고 듣는 사람들…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시작되고 고라, 다단, 아비람과 그 무리들이 향로를 들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왔을 때, 땅이 갈라져 그들과 그들의 가족과 모든 재산을 삼켜버렸습니다. 유다서 1: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오류에 몰두하였으며, 고라의 패역으로 멸망을 받았도다」 유다서가 경고한 「고라의 패역」은 믿음을 파괴하는 거짓 교사와 그에 속은 배교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말해도 진실을 말하지 않고, 들어도 진리를 듣지 않는 인간의 무지가 고라의 반역 속에서도 반복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무지와 독선의 죗값으로 멸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