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篇73:1—14
73: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73:2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73: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 하였음이로다
73: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73: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73:6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73:7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73:9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73:10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73: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73: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73:13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73:14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시인은 “하나님은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는 고백으로 시편 73편을 시작한다. 우리의 말로 하자면, 교회에서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배웠고, 그렇게 알고 믿어 왔다. 그러나 세상에 나가 부조리한 현실과 부딪히다 보면 그 믿음에 의심이 생긴다. 악인은 교만하고 힘을 휘두르지만 형통하고 평안하다. 반면,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고난과 고통 속에 살아간다. 이 간극 속에서 시인은 혼란에 빠지고 신앙의 회의를 경험한다. 그는 “실족할 뻔했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믿는 일이 세상 속에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솔직히 토로한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고전적 신정론의 논쟁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시인의 마음과 생각이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내면의 여정에 주목한다. 이 시의 핵심은 ‘왜 의인은 고난받고 악인은 번영하는가’라는 질문의 해답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시선과 인간의 시선은 다르다. 중요한 것은 이해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질문과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자세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혼란을 숨기지 말아야 하고 억울한 일은 하나님께 고발할 수 있다. 그래야만 한다.
시인의 탄원은 자기중심적인 고백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관계를 붙드는 방식이 된다. 이 자기중심적 고백을 넘어서기 위한 출발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감정과 의문을 숨기지 않는 정직함이다.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비난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토로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묻고 구하며 그 앞에 서 있으려는 태도, 이것이 시편 73편이 보여주는 참된 신앙의 중심이다. 세상의 부조리와 하나님에 대한 이해 사이에서 일어나는 진지한 고민이 하나님의 시선에 항복하게 만들고, 그것은 신앙의 고백이 되어간다.